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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운] 중국모델의 시금석, 충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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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9-02 16:41 조회22,0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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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대 용광로라는 말이 있다. 섭씨 사십도가 넘는 고온에 서쪽 내륙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으로 푹푹 찌는, 충칭(重慶), 난징(南京), 우한(武漢) 더위는 그야말로 악명 높다. 그런데 그 중 충칭이 요즘 다른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량장신구(兩江新區)로 대표되는 개발 열기, 차세대 지도자 보시라이(薄熙来)의 지휘 아래 추동되는 개혁 열기 속에, 지금 충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가공할 속도와 규모로 개발이 한창인 충칭의 량장신구는 상하이의 푸둥(浦東), 텐진의 빈하이(賓海)와 더불어 중국의 세 번째 신구다. 다만, 충칭의 경우는 특별하다. 1990년대 초반 떵샤오핑의 ‘남순강화’ 이래 상하이를 비롯한 동부 연해 지역의 개발이 오늘의 경제 초강국 중국을 만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신좌파들의 비판처럼 ‘먼저 잘 사는 사람부터 잘살게 하’는 이 개발정책은 지역간 불균형, 계급모순의 심화 같은 사회악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워놓았다. 이에, 수치적 성장보다 사회 내부의 균형적인 발전을 요청하는 ‘조화사회론’이 현안의 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충칭의 개발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맞물려 있다. 2000년대 출범한 ‘서부대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서부 12성 중 가장 눈부신 성과를 거둔 충칭은 2002년에서 2008년 사이 국유자산이 4배로 증가했고 민영자산도 가장 많이 늘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잇따른 미국 및 유럽발 금융위기에 상하이 지수가 불안하게 요동쳐온 것과 달리, 충칭만은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2010년에도 17.1%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지방재정 수입은 2008년에 비해 다시 두배로 올랐다. 충칭 상무부(商務部) 시장 황치판(黃奇帆)의 말을 빌리자면, 충칭의 개발 모델은 연해지구의 외향형 경제발전이 국제적 환경 변화에 약한 점을 보완하여 디자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충칭의 개발을 중국 사회주의 경제발전의 새로운 모델로 이론화하는 시도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칭화대학(淸華大學) 교수이자 중국의 대표적 신좌파 지식인 추이즈위앤(崔之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사회주의의 공공성을 결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충칭모델’을 주장하고 나왔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결코 인류에게 낯선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197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영국학자 제임스 미드(James Meade)가 제출한 ‘자유사회주의론’과 일맥상통하며, 그 원조는 다시 19세기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드의 자유사회주의론은 ‘공유자산의 시장 수익을 통해 세수(稅收)와 국채에 대한 의존을 줄여 전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밀의 핵심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구 영국 식민지 홍콩에 낮은 세금과 수준 높은 복지가 가능했던 주요 요인으로 홍콩정부가 보유한 광대한 토지자산을 꼽았다. 토지사용권으로 시장에서 거두는 수익을 통해 정부자산의 세금 및 국채 의존도를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홍콩 정부의 정책이 19세기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에도 영향을 줬던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토지국유화론 같은 자유사회주의 이론은 영국 본토에선 시행될 수 없었지만 식민지 홍콩에서는 가능했다. 말하자면 홍콩은 서구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나온 사회주의 이론의 성공적 실험장이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충칭의 개발 방향이 바로 그 ‘자유사회주의’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추이즈위앤은 충칭이 최근 거둔 경제적 성과의 주요 요인으로, 충칭정부가 세수와 국채에만 의존하지 않고 거대한 국유자산을 통해 정부수입을 늘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부대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서부 12성이 처음에는 15%의 낮은 세금정책을 시작했다가 곧 포기한 데 반해 충칭만은 그것을 견지하여 민자와 외자 유치에 성공했고, 또 국유자산을 증식시켜 광대한 ‘제3재정’을 확보함으로써 주민복지와 민영기업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국유자산으로 수익을 창출하여 그것을 다시 사회자산으로 분배하는 것,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를 수용하되 지난 30년의 개발 속에 퇴색한 사회주의의 이념을 되살리는 것이기도 하다. 

‘충칭모델’이 중국 내에서 어느 정도의 합의를 얻어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추이즈위앤의 이상주의적 전망과 대조적으로, 요 몇 년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충칭의 개혁과 개발이 문혁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며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충칭시 당서기로 부임한 보시라이가 암흑가와 벌인 대대적인 전쟁 과정에서 조직폭력 두목을 변호하던 변호사 리좡(李莊)이 위증교사 혐의로 실형에 처해진 사건이다(2009.12). 이에 중국 변호사 관련 단체에서는 보시라이의 개혁정책을 방해한 데 대한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며 반발했고, 중국 네티즌과 서방 언론들도 절차상의 민주와 개인의 인권을 무차별하게 짓밟는 충칭의 개혁이 문혁 시기의 정치숙청과 맞먹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거기에 올해 공산당 창립 90주년을 맞아 ‘홍가 부르기’ 캠페인이 충칭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지자, 다시 한 번 충칭의 개혁은 보시라이의 정치적 야망에 동원되는 현대판 문화혁명이라는 의혹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건국 이후 60년의 역사를 지나온 중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전(前) 30년을 추동해온 좌경노선이 후(後) 30년의 우선회를 거치면서, 얻어낸 화려한 성장이 ‘권귀(權貴)자본주의’라는 오명으로 얼룩져 있다. 추이즈위앤의 주장처럼, 냉전도 끝난 마당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배타적으로 선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양 극을 모두 달려본 중국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지, 또 그것이 흔들리는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 모든 궁금증에 충칭은 분명 중요한 시금석이다. 

백지운(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서남통신. 2011.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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