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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숙] 임순례 감독의 ‘더 나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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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0-07 14:16 조회27,1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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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의 덕목 하나를 일깨워 준 사람이 있다. 임순례 감독.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임순례 감독에게 딱 들어맞는다. 맨얼굴로 늘 헐렁한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나는 그녀는 따뜻하고 겸손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비주류 인간들의 고단한 삶을 마음으로 담아낸 영화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몇 달전 상영된 영화 <미안해 고마워>에서 그녀는 개를 인간과 서로 돌보고 사랑하는 친구로 뭉클하게 담아냈다. 그 감독에 그 영화,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몇 년 전 한 동물보호단체 대표가 되어 동물보호운동가로 나선 그녀는 “영화만 하라고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영화를 찍는 이유인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과 같은 것”이란다. 그녀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중심을 둔 ‘더 나은 사회’의 범위를 사람과 동물의 평화로운 교감과 공존으로 활짝 넓혀준다. ‘동물은 오래전부터 지구를 함께 나눠쓰고 있는 소중한 동반자’라는 그녀는 엉뚱한 개를 돕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충고하는 사람치고 막상 그런 사람을 돕는 사람은 없더라고 한다. 어릴 적 동생이 없어 동네 개를 포대기에 업고 다녔던 그녀는 어느 날 개장수의 철장에 갇혀 끌려가는 누렁이를 구해줄 수 없어 아프고 슬펐던 40년 전 어린 자신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었다고, 동네 누렁이를 업어주며 그들과 교감하며 자란 감수성은 그것이 누구이든 사회적 약자인 ‘작은 생명 하나에 담긴 온 우주를 보는’ 심성을 키워주었다 고백한다.


일본 다이지 마을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바다 그 속에 숨겨진 잔인한 비밀’, 무분별하게 돌고래를 포획·학살하는 인간의 잔혹함을 폭로해 세계적 화제가 됐던 루이 시호요스 감독의 다큐영화 <더 코브>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무참히 살해되는 생명을 보며 분노와 부끄러움을 일깨워주었다.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두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인간의 쾌락과 취향을 위해 동물 학대에 무감하고 태연한 사회, 여리고 작은 생명에 차가운 감성을 지닌 사회는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를 바 없을 것이라 말한다. 잔인한 폭력을 빗대는 ‘개 패듯 한다’는 말은 동물에 대한 우리 안의 섬뜩한 속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개를 나무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몽둥이로 때려 보신탕이 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문화상대주의는 잔혹한 수사일 뿐이다. 얼마 전 서울대의 실험동물 위령제에서는 “감정과 감각이 있는 생명체로서 실험에 희생이 된 실험동물을 위로하고” “이 세상에서 고귀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 실험동물의 영면을 빈다”고 추모했다.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자신들을 위한 동물의 고통과 희생을 기리는 인간의 예의는 ‘더 나은 사회’의 필수 덕목임이 분명하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헌신의 삶을 산 착한 의사의 삶을 훨씬 넘어섰다. 그에게 “나는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진 뭇 생명들 가운데 또 하나의 생명”은 평생의 삶을 안내해준 절대 가치였으며,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경외의 마음은 그를 핵실험·핵전쟁 반대운동의 열렬한 주창자로 만들었다. 그의 삶은 생명의 존재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야말로 착취와 죽음을 부르는 어떤 의도와 시도에 대해서도 저항하게 하는 출발점임을 말해준다. 마당에 뜨거운 물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던 옛말은 보이진 않지만 행여 조그마한 생명이라도 다칠 것을 염려한 마음이었다. 생명 있는 존재에 대한 이런 마음의 습관과 생활을 ‘더 나은 사회’의 덕목으로 추가하련다.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한겨레. 201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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