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민주당, 버려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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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0-19 09:53 조회29,3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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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걱정이다. 미우나 고우나 정통 제1야당이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큰 공도 세운 정당이다. 민주당이 힘을 쓰지 못하면 정권교체도 난망이다. 그런 민주당이 이른바 안철수 쓰나미에 떠밀려 존재감이 사라져버렸다. 서울시장 후보도 내지 못했다. 유의미한 지지를 받는 대권주자도 당내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요즘 민주당을 보면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하고 4년이 다 되어 가는데 민주당은 대체 어떤 자기혁신과 변화를 보여줬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부패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챙기면서 현실에 안주한 것 아닌가. 정권교체를 위해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고 야권통합의 길로 가주기를 바라는 국민에게 이제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것은 ‘우물쭈물’이다.
내년 선거는 결코 민주당에 쉬운 선거가 아니다. 더 이상 MB 심판을 하는 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년 선거에서 국민은 미래를 보고 선택할 것이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견제자 역할을 해온 박근혜씨가 전면에 나설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개혁을 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제발 기득권에 안주하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나서지 말아달라는 것이 한 가지다. 시장 후보를 양보한 안철수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 버려야 산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당헌·당규에 ‘50% 이상 물갈이’를 명문화하고 그 절차를 규정하는 방법이다. 물갈이 대상은 시민배심원들이 도덕성, 정체성, 의정활동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국민여론조사를 병행해도 좋다. 기준 점수 미달이면 무조건 대상으로 선정된다.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의 입김은 철저하게 배제돼야 하고 당선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1차로 선정한 공천탈락 대상자가 50%가 채 안되면, 점수가 낮은 순서대로 50%가 찰 때까지 대상으로 선정한다. 이걸 50%가 아니라 60%로 올린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비례대표도 임기를 2년으로 못박아서 더 많은 전문가와 각계 대표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환영받을 일이다.
또 하나의 개혁은 정체성 확립이다. 민주당은 정체성이 모호하다. 집권하기 전과 후가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미디어렙 등 주요 정책이 오락가락 혼란스럽다. 엊그제까지 한나라당을 기웃거리던 사람, 파렴치 비리사범,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비밀리에 충성편지를 썼다가 이것이 공개돼 망신살이 뻗친 사람을 공천하기도 한다. 이제는 민주당이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 핵심은 경제민주화가 돼야 한다.
월가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해 일어난 월가 점령 시위가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내일은 브뤼셀, 런던, 취리히,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25개국 400여개 도시에서 연대시위가 예정돼 있다. 국내에서도 ‘여의도를 점령하라!’ 집회, ‘1%의 탐욕에 맞선 99%의 행동’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함께 점령하라’ 운동은 신자유주의 시장독재를 반대하고 경제민주화를 촉구하는 운동이다. 소수 특권층만 살찌는 경제가 아닌 기회와 발언권과 분배의 형평성이 보장되는 경제를 주장한다. 기득권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형해화된 민주주의가 아닌 힘없는 다수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진짜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 시위는 진작 시작됐다. 김진숙의 고공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 운동이 그것이다. 나아가 재벌독식에 항의하는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들의 외침도 있고, 수출대기업을 위한 한·미 FTA 때문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농민들의 저항도 있다. 무너지는 중산층, 차별받는 비정규직, 늘어나는 근로빈곤층, 3포세대라고 자조하는 청년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빈곤율과 자살률에 신음하는 노인층, 이들 모두의 한숨소리가 사실은 경제민주화를 염원하는 숨죽인 절규가 아닐까.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 시위 지지를 표명했다. 한국의 민주당도 경제민주화를 정체성의 중심에 둬야 한다. 그리고 야권통합은 바로 경제민주화 동맹의 구축과정에서 이룩해야 한다. 선거에 임박해서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후보단일화를 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국민이 곱게 보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정치를 하는지,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 분명해야 한다. 민주당은 경제민주화 동맹 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더 이상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당장 서울시장 선거가 급선무지만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감동적인 개혁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유종일 KDI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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