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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견제와 재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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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0-19 09:55 조회28,4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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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서울에서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인터뷰에 참가한 프레드 히아트가 11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에 발표된 기명칼럼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안보, 평화,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를 우려하고 있고, 이 때문에 미국의 재관여(reengagement)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는 이것이 오보라고 주장했지만, 만 하루가 지난 시점에도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에서 이 글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뷰 내용을 지면으로 보도한 다른 기사도 이 대통령이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관여(engagement)를 강조하고 미국에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내용의 발언을 인용했다. 대통령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바란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최근 G2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될 정도로 중국의 부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미·중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어느 한편과 동맹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처하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우선 대미, 대일 교역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국가인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은 지속가능한 정책이 될 수 없다. 이번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한·미 FTA 체결을 경제동맹에 비유했는데 현실은 중국과의 경제동맹을 더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동북아에서 중국은 미국에 밀리지 않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확보해가고 있다. 미국이 힘의 우위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동북아에서 항상 한·미관계를 중·미관계보다 중시할 것이라고 보장하기 어렵다. 중요한 국가이익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게 되면 미국의 대외정책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한·미동맹에 외교적 자원을 쏟아붓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세계경제가 불안해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정치적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대통령이 나서 중국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후과를 초래할 수 있는 신중하지 못한 처사이다.

 

한·미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발상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 한·미동맹의 강화를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 중국과의 관계도 잘 풀릴 수 있다는 논리가 등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중국이 자신을 미국과의 종속관계로 전락시키는 논리를 환영할 리 없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첫 중국 방문을 시작하던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동맹을 냉전시대의 낡은 유산이라고 비판한 이후 한·중관계는 껄끄러운 상태를 유지해왔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베트남과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메커니즘이 나타났다. 베트남이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보이자 중국이 이에 강경한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카드를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인접해 있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군비증강, 인권문제 등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들을 당당하게 제기하려면 역내의 문제는 지역국가들과 지역주민들이 주체적으로 해결해간다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장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면, 위의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중국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반발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도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양국의 신뢰를 증진해야만 이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우려된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1.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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