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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박정희노믹스는 특권동맹만 배불린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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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1-09 13:20 조회22,9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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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6일은 박정희 군사 쿠데타 50주년이었고, 10월17일은 유신 쿠데타 39주년이다. 이에 맞추어 전국 15개 민주화운동 단체가 모인 민주평화복지포럼은 10월19일 ‘5·16 군사반란 50년’ 3차 학술대회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갖는다. 또한 필자를 포함한 8인의 학자가 박정희 경제신화를 검증한 책 <박정희의 맨얼굴> 출판기념회도 한다. 10월 유신 때 필자는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였지만 아직도 당시에 느꼈던 공포와 분노가 뇌리에 생생하다. 청소년기를 유신 폭압 아래서 보낸 탓에 낭만을 즐기거나 방황할 틈도 없이 일찍부터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정희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이는 박정희의 18년 집권 기간 중에 이룩한 고도성장 덕이다. 다수 의견은 박정희가 독재는 했지만 경제만은 잘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덕에 최빈국이던 우리나라가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의 경제 업적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다. 우선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은 예외적인 성공이 아니었으며,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공통으로 나타났다. 박정희의 빼어난 지도력보다는 역사 및 환경 요인이 중요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박정희 시대의 성장은 값비싼 희생의 대가였다. 고도성장 이면에는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의 막대한 희생이 있었다. 무엇보다 박정희식 성장은 정치·경제적으로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지속 불가능한 성장이었다. 정치·경제적 위기가 늘 잠재해 있었다.

 

특권적 성장 동맹만 배 불린 ‘박정희의 나쁜 성장’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박정희가 남긴 경제적 유산이다. 박정희의 고도성장 정책은 재벌·토건세력·경제관료 등을 축으로 하는 특권적 성장 동맹을 낳았고, 이들은 박정희 사후에도 건재해 오늘날까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동맹은 성장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확대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747공약이야말로 성장 지상주의를 집약해 표현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환율·저금리 정책, 부자 감세와 재벌규제 완화, 4대강 사업과 관치금융의 부활 등은 재벌·토건세력·경제관료 3각 성장 동맹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특권적 성장 동맹은 고용과 복지와 민생을 위해서 성장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들만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성장은 하는데 양극화가 심화되고 민생은 더 곤궁해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성장은 나쁜 성장이다. 이제 성장의 내용을 따져야 한다. 소수 특권층이 아닌 대다수 국민을 위한 성장을 해야 한다.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고, 모든 이의 행복을 증진하는 성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실질적인 기회 평등이 보장되고, 경제 의사결정에서 평등한 참여가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 분배의 평등도 제고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경제 민주화다.

 

1987년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경제 민주화는 별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에 개혁을 한답시고 시장자유화를 추진한 결과 재벌주도 경제가 되고 말았다. 관치의 반대가 시장 만능은 아니다. 시장을 살리되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것, 즉 시장 자유화가 아닌 시장 민주화가 정답이다. 시장 기능을 존중하면서도 실질적 기회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 정책과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규제를 함께 도입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재벌 개혁과 복지 확충이 바로 그러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성장 동맹의 위세는 강한데 민주·개혁 정부의 정치 기반은 취약했던 탓에 재벌 개혁은 용두사미가 되었고, 복지 확충은 미흡했다. 결과적으로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이제 근대화의 마지막 완성 단계인 경제 민주화를 본격 추진해야 한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로 성립된 개발독재 체제는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룰 때까지 4반세기 동안 산업화를 이룩했다. 이후 성립된 ‘87년 체제’는 정치 민주화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으나 경제 민주화에는 실패했다. 87년 정치 민주화 체제도 4반세기가 흘렀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거쳐 탄생할 2013년 체제는 경제 민주화 체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특권적 성장 동맹에 대항해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강력한 경제 민주화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시장 개혁 세력과 진보 개혁 세력이 경제 민주화의 기치로 하나가 돼야 한다. 이것만이 박정희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시사IN. 201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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