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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야당은 행동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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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1-09 13:24 조회21,9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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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놓고 국회에서 여야 대결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야5당이 힘을 합쳐 비준안 통과를 저지한다고 하지만 한나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이면 막을 방도가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한·미 FTA는 미국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관철된 불평등 협정이다. 국내적으로 보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다. 이익은 안그래도 잘나가는 수출대기업에 돌아가고, 농민과 자영업자 등 힘없는 서민에게는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의 자주적인 공공정책 결정권을 제약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조약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자본의 논리와 시장원칙을 강조하는 미국식 제도를 많이 도입하고 지나치게 시장을 개방한 결과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헌법정신을 따라 유통법·상생법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들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외국자본에 유린당하고 있는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런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미국 투자자들의 이익 보호가 국내법에 우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우리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촛불의 힘으로 막아냈다. 한·미 FTA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비준안 강행처리에 큰 부담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국민이 한·미 FTA를 강력하게 반대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촛불은 없다. 광우병 쇠고기보다 백배, 만배 위험한 게 바로 한·미 FTA인데, 여론은 오히려 찬성 편이 더 많다.

 

왜 다수의 국민이 한·미 FTA를 찬성하는 걸까? 잘 모르기 때문이다. FTA의 효과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예측이 쉽지 않다. 그런데 영향력 있는 언론이 대부분 찬성 입장에 경도된 보도를 하고 있으니 여론이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한창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던 2006년 공중파TV에서 투자자-국가제소제도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보도한 직후에는 반대여론이 더 높았다. 한·미 FTA의 문제점이 잘 알려지면 여론은 얼마든지 돌아설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조금 불공평하고 일부 문제가 있더라도 미국과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서 이만큼 살게 된 데는 미국의 역할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위비 분담 요구가 상징하는 것처럼 과거에 미국이 한국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키워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키울 만큼 키웠으니 미국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자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외환위기 당시를 상기해보라. 당시 미국은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상을 하고 있는 동안 배후에서 간섭을 하면서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다. 초고금리 등 강력한 긴축정책과 신속한 구조조정,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리해고제 도입 등을 강요했다. 그 결과 기업들의 줄도산이 일어났고, 대량실업과 노숙인이 발생했다. 외국자본은 고환율과 자산가격 폭락을 틈타 헐값에 우리 기업과 부동산 등을 매집해 엄청난 수익을 냈다. 지금 우리나라 굴지의 은행들이 다 사라지고 외국자본이 금융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도 다 이때부터 비롯된 일이다. 그런데 미국은 정작 자기 나라에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초저금리와 재정적자 등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서고 구조조정은커녕 금융기관 살리기와 기업 지원에 바빴다.

 

우리나라는 어차피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니 한·미 FTA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퍼져 있다. 이건 참 황당한 생각이다. 한·미 FTA 없이도 우리는 이미 수출을 매우 잘하고 있다. 국제무역의 기본적인 제도는 FTA가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해외충격에 유난히 심하게 흔들리는 이유는 지나치게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출시장 확대보다는 내수기반 강화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바다. 그런데 한·미 FTA는 이를 거꾸로 뒤집는 정책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일시적인 인기와 여론에 영합하지 않는다. 도덕적 신념과 최선의 지적 판단을 무기로 때로는 여론과 맞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여론을 거슬러 한·미 FTA 저지 투쟁에 나선 것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여론 영합보다 더 나쁜 것이 여론 무시다. 여론을 돌리려는 노력, 국민을 설득하려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국회에서 몸싸움으로 저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민 여론을 반전시켜야 한다. 한·미 FTA의 문제점을 쉽게 알리는 전단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 당원들 교육부터 철저하게 하고, 이들이 구국의 의지를 가지고 여론의 전사로 나서게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진정성이 느껴질 때, 한·미 FTA에 대한 여론이 바뀔 뿐만 아니라 야당에 대한 실망과 냉소도 기대와 믿음으로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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