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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중도보수 정당의 탄생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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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1-05 09:23 조회21,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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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보수 정당을 논하기 전에 우선 개념부터 단순화시켜 보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대화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태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을 권장하고 그 결과인 승자와 패자의 격차를 당연시할수록 보수적이고,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고 결과적 평등을 강조할수록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중도의 특징은 자기 입장을 견지하되 상대방에 대해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너그러운 태도에서 나타난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사물의 불확실성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도보수’ 정당이란 시장에서의 경제적 자유와 기득권 보호를 중시하되 진보의 가치인 연대와 평등의 중요성에도 상당부분 공감하여 나름 의미 있는 분배 및 복지 정책 등을 수행해갈 수 있는 정당이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최근 스스로를 중도보수 정당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이 위에서 정의한 그 정당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현대판인 신자유주의의 장기 창궐로 우리 사회의 격차 심화현상은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의 통합은커녕 유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상황에서 지난 몇년간 보여준 집권 한나라당의 태도는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 이에 맞서야 할 야당들은 충분히 진보적이지 못했거나 무력할 뿐이었다. 결국 의지할 데 없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희망을 잃어갔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이 의미하는 바이다. 중도보수로 거듭나겠다는 집권당의 의지 표명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드는 이유다.

한나라당 변화의지에 감사 마음

그러나 그런 좋은 일이 현실화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나라당의 변화선언이란 고작해야 6·2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진보화된 민심에 충격받아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대비한 선거공학적 발상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폄하하기 때문이 아니다. 민심을 제대로 읽고 그에 대응하여 변화하겠다는 것은 마땅히 칭찬할 일이다. 게다가 당내에는 기왕부터 중도보수 그리고 심지어는 중도진보에 가까운 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해서, 따져봐야 할 것은 의도나 의지가 아니라 실제로 당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수행능력이다. 그런데 작금의 ‘부자감세 철회’ 논쟁이 보여주듯 그 능력은 심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사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의 여당이 현 정권의 창출과 운영, 집권연장 프로젝트 수행 과정을 주도하는 이른바 당내 ‘주류 세력’의 이익에 반하여 새로운 노선과 정책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 구도 하에서는 당 개혁파들의 현재 및 미래의 정치생명이 상당부분 주류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개혁파들이 제대로 된 중도보수 정당의 탄생을 도모하겠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는 조성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중도보수 노선을 주창하거나 그에 동의하는 인물을 차기 대선주자로 옹립하여 그의 당선을 가능케 하는 일이다. 당연히 가장 빠른 길일 게다. 다른 하나는 한나라당의 2012년 선거 패배를 ‘건설적으로’ 방조하는 일이다. 당내 주류인 보수파의 양보는 그제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개혁파들의 독자정당화를 이루는 일이다.

선택은 당내 개혁파들의 몫

지난 수년간의 통계를 분석해보면 중도가 아닌 진보와 보수 정당에 대한 안정적 투표율은 양쪽을 합쳐 대략 30%에서 40%이다. 결국 중도진보와 중도보수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60%에서 7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확대는 이념 및 정책 정당에 유리한 선거정치 환경을 제공한다. 따라서 개혁파들이 중도보수 이념을 분명히 하고 그에 합당한 정책 패키지만 제대로 마련한다면 그 선거제도와 그 정치공간에서 유력한 독자정당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상당하다.

선택은 물론 한나라당 개혁파들의 몫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과감하고 자신있게 움직이길 바란다. 한국 정치시장에서 지금처럼 중도보수 정당에 대한 수요가 높았던 적은 없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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