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숙] 나눔의 롱테일 법칙,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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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6-02 15:45 조회23,8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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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금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모금학교에 수강생이 몰리고, 모금의 기술과 성공 사례들은 필수 강의주제이다. 미국 모금가 킴 클라인의 책 <모금이 세상을 바꾼다>는 예비 모금가들의 필독서이다. 머지않아 모금가는 새로 직업군으로 떠오르고, 모금 컨설팅은 유망한 비즈니스 영역이 될 것이다. 차별화된 홍보와 모금액의 크기에 비례해 기관의 평판이 좌우되고 기부자 쏠림이 뒤따르니, 모금 전략은 더욱 정교해야 한다. 유명 연예인 홍보대사, 텔레마케팅과 거리모금은 기본이고, 기부자를 나이와 직업 등으로 데이터화해서 관리하는 것도 상식이다.
모금 기술은 진화하고 있다. ‘모금의 과학화’ 덕분일까. 지난 10년간 순수기부액은 갑절로 늘었고, 정기기부자 비율도 높아졌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통계와 숫자 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모금은 ‘가치를 팔아’ 돈을 모으는 일이므로, 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섬세한 모금전략은 절대조건이다. 나눔의 사람들. 그들이 왜 나누는지, 어떤 순간 나눔을 선택하는지 그 마음을 잘 읽는 것은 좋은 모금전략과 유능한 모금가의 덕목이다. 사실 좋은 모금 아이디어는 대부분 그들을 통해 배운다. 그중에도 조용한 다수가 만들어내는 나눔의 역동은 최고의 모금 교과서이다.
지난해 12월, 어느 해 연말보다 아름다운재단은 분주했다. 누리집(홈페이지)으로 매일 수백명의 사람들이 기부했다. 정부가 올해 예산 중 ‘결식아동 방학중 급식지원’ 부분을 전액 삭감한다는 발표가 난 직후였다. 급식지원비 삭감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으니, 이 모금은 초긴급 기획이었다. ‘나는 오늘 밥 대신 희망을 먹는다’는 결식 제로 캠페인의 기부자는 삽시간에 5000명을 넘었고, 모금액은 억대를 금방 넘었다. 상금과 장학금, 회사 연말 쫑파티 비용, 아이 생일 선물 살 돈을 보낸다고 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보탭니다. 배고파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가족끼리 맛있는 거 먹다 갑자기 너무 부끄러워져서요.” “정부는 내 세금으로 애들 밥 먹여라.” “아, 고맙다!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구나.” 방학이 눈앞에 다가오자 기부는 가속화되었고, 어떻게 쓸 거냐, 이런 일 다신 없어야 한다는 전화도 늘었다. 한겨울,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챙겨 먹이자는 모금 캠페인에 사람들은 뜨겁게 응답했다.
한편의 독립영화였다. 그 영화 명장면의 주인공은 꼬리를 물고 출연한 기부자들이었다. 누리집을 촘촘하게 도배해준 그들의 한마디는 모두 가슴 뛰는 명대사였다. 아이들에 대한 공감과 안타까움, 무책임한 정책에 대한 분노는 나눔의 촉매제였다. 눈에 띄지 않아 ‘사소한 다수’로 이름 붙여진 그들의 나눔 행렬은 장관이었다. 소리 없는 다수가 만들어낸 나눔의 힘에 놀라고 감동한 건 바로 그들 자신이 아니었을까. 나눔의 ‘롱테일 법칙’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80%의 ‘사소한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 법칙은 모금에도 예외가 아니다.
나누는 사람들은 말한다. 경쟁과 성공을 재촉하는 세상에서 ‘무엇이 잘사는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눔이었다고. 나의 1%는 세상의 것이라며, 먼저 떠난 남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돌 맞는 아이를 축복하며, 혹은 결혼을 기념하고, 자신의 환갑을 자축하며 기부한다. 이유는 다르지만, 나눔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순간 선택된다. 나누면서 삶의 울타리가 조금씩 넓어진다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 자란다고 말한다. 공감은 내 안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의 자리에 서보는 마음의 습관이다. 사람들이 이런 마음의 습관을 갖게 해주는 일이 모금이다. 그래서 모금은 ‘과학’이자 ‘예술’이라 한다.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한겨레. 2011.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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