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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북핵, 지진 그리고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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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9-27 18:09 조회30,2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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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차 핵실험에 이어 경주 인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고 이번주 월요일엔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큰 ‘여진’을 겪자 몇 년 전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점심식사 시간에 한 저명한 일본 사회과학자 옆에 앉게 되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초면에는 하지 말아야 했을 ‘무례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기억나는 대로 적자면 이런 내용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건으로 지구상에서 핵에 두 번 피폭된 유일한 민족이 되었다.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참혹한 원폭 피해를 겪은 당신들에게 일본 열도에 늘어선 원전이란 무엇인가? 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 때문에 그것을 다룰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은 아닌가? 마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반복 강박에 빠지는 것처럼 당신들은 공포의 원천인 핵에 접근해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서툰 영어로 했던 말이라 그가 내 진의를 정확히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들은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군요, 하고 말했다.


불현듯 그 일이 생각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게 하는 부끄러움의 감정도 함께 밀려왔다. 그에게 내가 했던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안쓰러운 이웃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는 태도가 스민 것이었다. 지금 한반도 상황을 비추어보면, 그런 내 태도는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들추는 한심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 일본 학자가 북핵과 원전 인근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상황을 두고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핵폭탄과 원전의 파괴적 위험에 당신네 한반도 사람들도 아주 가까이 갔군요. 하지만 사정은 일본인들보다 훨씬 더 고약할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이 정확히 한·미·일 가운데 어디를 겨누는지 짚어 말하긴 어렵다 해도, 아무튼 같은 민족 또한 타격 목표에 포함하고 있는 핵은 타국과의 전쟁에서 겪은 핵과도 다른 트라우마일 것입니다. 원전도 그렇습니다. 원전 밀집도와 주변 지역의 주민 수에서 세계 1위인 한국의 위험도는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은 규모 9.0의 지진에 무너졌지만, 한국은 그보다 훨씬 낮은 규모의 지진에도 괴멸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신들은 아직 피폭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행운’이 우리 일본보다 유일하게 나은 점인 듯합니다. 부디 그 행운이 남겨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빕니다.(후략)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6년 9월 21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21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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