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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역사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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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8-13 14:57 조회20,5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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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병합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일본 간 나오또 총리의 담화가 8월 10일 발표되었다. 한일 양국 지식인들이 연대서명을 하여 일본 정부에게 병합의 불법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압력을 가한 후의 조처여서 더욱 주목된다. 그런데 이 선언으로 일본과 그 이웃인 한국·중국 사이의 역사문제는 종식되는 것일까.

 

이 담화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여론은 동아시아에 화해를 가져올 진일보한 조처라고 대체로 반기면서도 그것으로 역사화해가 실현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그전의 무라야마 담화보다 진일보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병합의 불법성을 직접 표현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과 후속조치를 촉구하는 소리가 높다. 중국에서도 아직은 일본의 태도에 불만족스러워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일본 전 국민이 정확한 공통인식에 도달해야만 아시아 이웃 국가와 진정한 역사화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과 중국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내부에서 아직도 이 담화에 담긴 수준 정도의 역사인식조차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산께이신문 같은 우익세력은 ‘자학(自虐) 담화’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판할 정도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역사화해의 길이 평탄치 않음을 나는 7월 24일 중국의 한 신문사의 초청으로 꽝쩌우(廣州)에 가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한중관계’란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나서 절감한 적이 있다. 200명이 넘는 일반인 청중에게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한중관계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강릉단오제나 공자가 중국 것이냐 아니냐 따지지 말고 동아시아 문화 유산을 공유재로 삼자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중국 인터넷에서 강연 내용을 둘러싼 작은 논란이 벌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초점은 공자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내가 인정했다는 점을 둘러싼 오해와 해명이다. 다른 주요 내용은 젖혀두고 말이다. 대중의 정서 차원에서 역사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어 불안하다.

 

역사분쟁은 동남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과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포럼”(유네스코 한국/베트남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공동주최)에서 발표한 태국 학자(타닛 아포른수반)에 따르면,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프레아 비히어 사원 문제가 역사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그밖에 라오스와 베트남 사이에도 역사분쟁의 소지가 있는 눈치이다. 이렇듯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국경이 획정된 동남아 여러 나라 사이에도 역사분쟁의 가능성은 적지 않다.

 

도대체 역사화해는 가능할 일일까. 이 지난한 문제에 대한 답의 일단을 위의 회의에 참석한 미국 학자(제임스 로원)의 발언에서 시사받았다.

 

그는 미국의 교과서들에 실린 베트남 참전에 대한 서술 내용을 비교 분석하는 발표를 하였다. 그는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베트남과의 화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라고 강조했다. 미국인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해 저지른 자기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은 탓에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과정에서 의회와 국민에 대한 기만, 민간인 살상 등 베트남전 당시와 유사한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화해는 먼저 그들이 한 일을 인정하고, 그 다음으로 그 잘못에 대한 사과하며, 끝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세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이다.

 

그것은 결국 역사화해는 국가간 차원의 화해와 더불어 개별 국가 차원의 화해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의 성숙이 요구된다는 뜻으로 새겨진다. 그런데 나는 이틀간의 회의를 종합하는 토론 자리에서 이 두 차원과 더불어 개인 차원의 화해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것은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화해에 대한 유용태 교수의 발표를 들으면서 생각해본 것이다. 자국의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인정하기 어려운 국가권력 대신에 시민사회가 나서야 참전군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인정하고 위로하여 그들 “마음속에서 고백의 증언을 할 명분과 용기가 생겨날 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이 말은 참전 군인들의 개인 차원의 화해를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베트남전쟁의 결과에 간접적으로 연루된 우리 개개인 모두 전쟁으로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여 과거와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마음가짐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 총리의 담화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응에 관심갖는 사이에 무시된 타이완에서는 일본이 진정으로 동아시아의 화해를 원한다면 식민지였던 타이완(중화민국)에 대해서도 사죄해야 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역사화해를 양국간의 문제로 보지 않고 연동하는 동아시아(동북아와 동남아)의 맥락에서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복잡하게 중첩되어 있음이 쉽게 드러난다.

 

결국 이런 연관된 맥락 속에서 타인의 감정과 입장을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 곧 공감(empathy) 능력을 키워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면서 좀더 자유로와지는 것이 역사 화해로 이끄는 지름길이 아닐까.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서남통신. 20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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