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 복지사회를 위한 ‘역행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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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7-27 15:07 조회21,29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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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 이후 확산되어온 복지담론을 여권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19일 발표한 ‘뉴비전보고서’는 ‘0~5세 무상보육’ 등의 복지정책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방안을 제시했다. 당내 논의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지만 진보개혁진영의 복지담론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고 증세를 맹목적으로 반대한 과거의 행태와 비교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권의 ‘좌클릭’이 복지사회에 대한 논의가 이념적 논쟁으로 전락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도 갖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지 논의가 현실성을 갖게 된 데에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가 큰 공헌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부는 복지를 위한 돈이 부족하다는 논거를 스스로 부정했다.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환경파괴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일부 지역의 땅값 상승이나 대형 건설사의 배를 불리는 것 이상의 경제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토건사업에 22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아이들을 먹이거나 교육시킬 예산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부자감세를 실시하면서 이러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지출구조의 변화와 사업조정을 통해서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방증했다.
게다가 통일세 제안은 복지확대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맹목적 감세론을 스스로 부정했다. 감세는 1980년대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정책이다. 감세가 기업의 투자를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결국 세수도 증가시키는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한국의 보수세력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사회복지지출이 OECD 평균수준인 GDP 대비 20%의 절반도 안되는 9%에 불과한 우리 사회에서 감세만을 앞세우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맹목적 감세는 미국에서도 재정적자를 크게 증가시켰고 현재 미국을 국가부도의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외면하던 현 정부가 통일세 신설이라는 증세론에 불을 붙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5일 정부 고위당국자가 통일세를 신설해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고, 직접세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세금은 그해에 필요한 만큼 거두어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사용처도 불명확한 세금을 거두어 모아두겠다는 발상이 그 동안 감세를 신념으로 삼았던 정부에서 나온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증세에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어대던 보수언론도 이번에는 우호적으로 반응하는 자가당착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일을 준비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통일은 남과 북의 경제적 이익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개성공단사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막아놓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통일세를 신설하자는 주장은 공허하다. 대북정책의 실패를 감추려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 1조1189억원의 남북협력기금 사업비 중 862억원(7.7%)밖에 집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통일세 주장은 증세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이나 통일 모두를 위해서 지금은 통일세의 신설이 아니라 붕괴 위기에 직면한 공동체와 연대의 정신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역행보살이라는 말이 종종 언급된다. 불가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방해하거나 거스르는 인연이지만 정진력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을 지칭한다. 이명박 정부가 여러 가지로 국민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을 더욱 깊게 만든 동시에 복지사회를 위한 역행보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어렵게 만들어진 기회를 실질적인 변화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경향신문. 201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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