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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국가의 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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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0-11 13:40 조회21,3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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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번 노벨상위원회는 세계에 아주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중국 작가 류샤오보(劉曉波)를 선정한 것이다.

류샤오보는 경제적 성공과 정치적 통제를 결합한 중국 모델의 본질을 되묻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2009년 국가전복선동죄로 11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그를 고난의 길로 안내한 것은 1989년의 6·4 톈안먼(天安門) 사태였다. 그는 당시 마지막까지 시위대와 톈안먼 광장에 남아 있었고, 시위대가 광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군대와 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노벨 평화상이 세계에 던진 질문

톈안먼 사태는 수많은 '국가의 죄수'를 만들어냈다. 시위에 참여했던 류샤오보는 체포되었으며 유혈 진압에 반대한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은 모든 직책에서 쫓겨나 연금되었다. 경제적 성공에 도취한 중국인들이 류샤오보에 무관심할 수는 있지만, 그 성공을 가져온 데 기여한 자오쯔양의 역할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오쯔양은 더욱 문제적 인물이다.

1980년대 중반 중국에서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현대화와 체제 개혁을 위해 중국 문화의 한계를 반성하고 서구의 사상 문화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문화열'이 고양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류샤오보는 문단에서 흑마(黑馬, 다크호스)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물론 '문화열'의 배경에는 개혁 개방이라는 거대한 실험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은 경제적 붕괴 직전의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한 시기였다. 당시 공산당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제전문가는 천윈(陳雲)이었다. 그는 경제를 새장에 가두어 놓아야 한다는 '조롱(鳥籠)' 경제론을 제시했는데, 이는 개혁이라기보다 조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때 덩샤오핑(鄧小平)은 경제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개혁가들을 등용하는 총명함을 보였다. 대표적인 이가 자오쯔양이다.

자오쯔양은 1976년 쓰촨성 제1서기로 있으면서 경제적 통제 완화를 시작했으며 1978년에는 농민과 기업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정책 결정을 내린다. 자오쯔양은 안정적으로 경제를 개혁했고 "식량을 구하려면 쯔양을 찾아라"는 노래가 민간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성과를 인정받은 자오쯔양은 1980년부터 베이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전국 규모의 경제개혁을 지휘하게 되었다.

개혁의 동반자였던 덩샤오핑과 자오쯔양이 충돌한 것은 1989년 4월의 학생운동 때문이었다. 자오쯔양은 학생들의 집회가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제기한 부패 반대와 민주에 대한 요구는 사회 각계의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고 개혁을 한층 심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다수'는 자오쯔양을 억압하는 결정을 내렸다. 1989년 5월 17일 상무위원회는 계엄을 결정했고, 5월 19일 계엄이 선포되었다. 이후 수십만 인민해방군이 베이징에 물밀 듯 들어왔다.

마침내 6월 4일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류샤오보는 시위대와 함께 탱크와 소총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시간 자오쯔양은 자택 정원에서 거리에서 들려오는 총성을 접했다. 유혈사태 이후 학생 시위를 동정하거나 무력 진압에 반대한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다. 류샤오보도 이때 체포되었고 감금과 투옥을 거듭했다. 자오쯔양은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킨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이로 규정되었으며, 2005년 사망할 때까지 자택에 연금되었다.

중국의 경제적 성공과 그늘

중국은 경제개혁으로 인한 성공을 누리고 있지만 그 성공의 그늘에는 '국가의 죄수'들이 있다. 중국이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현재, 개혁의 지휘자였던 자오쯔양의 솔직하고 반성적인 유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1989년 자리에서 물러난 뒤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우리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시하는 민주 제도는 인민이 주인이 아니라 소수, 심지어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 되었다."(<국가의 죄수>에서 인용)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일보. 201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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