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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아시아'를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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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1-22 09:31 조회21,3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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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감동적이다. 깜짝 승리 뒤에 일약 스타가 되었는데도 "돈을 많이 벌어야죠, 가게를 내야 해요"라고 말하는 모양이 천진스럽다. 상대 선수가 부상한 약점을 이용하지 않아 승리를 놓치기는 했지만 그 대신 존경을 얻은 유도 선수도 있다. 스포츠가 세상 시름을 가리는 극장 정치의 도구로 이용된다는 힐난도 있다. 그렇지만 스포츠에는 진솔한 삶의 드라마와 보통 사람들을 묶어주는 힘이 있다. 특히 아시안게임에는 '아시아'라는 지역을 만드는 역할이 있다.

젊은 도전적 에너지 넘쳐

사실 아시아인에게 '아시아'는 매우 낯선 존재였다. 그 이름 자체가 그리스인의 발명품이다. 최초의 '아시아'는 그리스와 이집트에 대비되는 지역 개념으로 페르시아제국이나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지방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어 유럽인들의 지리상 발견 경로를 따라 '아시아'의 경계는 변경되었다. '아시아'는 그리스와 로마,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영역이다.

근대화에 뒤졌던 아시아는 후진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근대화는 유럽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19세기 말 일본이 탈아(脫亞)를 꿈꿨던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는 고통스런 20세기를 거치면서 잔여와 낙후에서 벗어나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참가국 면면을 돌아보면 새롭게 떠오르는 아시아의 정체성을 실감할 수 있다.

메달 순위라는 기준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종합순위 1∼3위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는 미국과 유럽을 강타했지만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었다. 동아시아는 이제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성장 축이자 안전판이다. 그 뒤로 이란 홍콩 대만 북한 등이 포진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란과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나라들이며, 대만과 홍콩은 중국에 일방적으로 포섭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아시아에는 서구와 대비되는 도전적 에너지가 넘친다. 그것은 근대화의 시차에 따라 상대적으로 젊은 주권국가의 배타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의 주권국가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탄생했는데, 이후 국가들은 영토적 주권과 배타적 통치권에 기반해서 피 어린 투쟁을 거듭했다.

힘을 축적한 아시아 국가들도 완전한 영토 주권을 위해 싸울 기세들이다. 국가는 정부 사람(people) 영토의 3요소로 성립되지만, 가장 중요한 존재는 사람이다. 영토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영토주의 전략은 국가와 전쟁의 형성을 통해 영토와 인구를 통제하려고 한다. 국가는 영토와 관련된 분쟁을 통해 인민을 감정적으로 선동해서 자신의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은 우리가 '아시아인'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

영토주의 국가에 비하면 시장과 기업의 힘은 '아시아'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편이다. 시장과 기업은 직접적으로 영토와 인민을 통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국가의 영역을 가장 신속하게 뛰어넘어 이동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시장과 기업은 이윤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호혜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직접적 관심이 없다.

경쟁과 협동 속 우정 자라

아시안게임과 같은 스포츠 교류는 지역적ㆍ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메달 순위가 국가주의를 반영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군사력과 경제력의 불평등에 비하면 아시안게임은 훨씬 평등한 규칙 하에서 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 이란이나 대만의 참가를 막을 수 없다. 축구 예선에서 한국이 북한에 졌지만 화내지 않아도 된다.

도시나 클럽 단위의 게임도 '아시아'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 축구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덕분에 성남과 이란의 이스파한은 서로 감정을 교류했을 것이다. 선수들의 경쟁과 협동 속에서 아시아 시민의 우정은 무럭무럭 자란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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