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지식인들의 리비아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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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26 12:32 조회27,8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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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리비아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영국의 런던정경대학(LSE)이 카다피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았다는 이유로 총장이 사임한 사건이 큰 뉴스가 되었다. 또한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가 이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의 표절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학교 쪽은 대법원장을 지낸 로드 울프 경에게 이번 사건의 조사를 위임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 이 사건의 낙진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 소재한 모니터그룹이라는 홍보회사가 리비아 정부의 의뢰를 받고 ‘새 리비아’의 이미지 개선작업을 위해 활동한 내용이 알려진 것이다. 리비아는 1984년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관이 연루된 영국 경관 살해사건과 1988년 팬암항공기 폭파사건으로 고립된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리비아는 2003년을 기점으로 국제사회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 해빙 움직임은 소위 ‘리비아 모델’로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모니터그룹이 대외비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리비아 홍보를 위해 2006년부터 국제 여론 주도층을 초청해 카다피를 만나게 주선했다고 한다. 초청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앤서니 기든스(구조화이론, 제3의 길), 하버드대학의 조지프 나이(소프트파워)와 로버트 퍼트넘(사회자본론), 그리고 벤저민 바버(강한 민주주의론) 등 세계적인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뉴스테이츠맨>이나 <가디언>과 같은 진보언론에 자신의 방문기를 기고하면서 국제사회가 리비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주의의 모델들>로 유명한 정치학자 데이비드 헬드는 사이프의 박사논문을 지도하면서 리비아의 내부 개혁에 힘을 보태려고 했다. 요컨대 이들은 리비아판 포용정책을 지지했던 셈인데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고 보니 독재권력을 편들었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고 학계의 격렬한 논쟁으로 번지는 중이다.
리비아 사태가 발생하자 짤막한 개인성명을 낸 뒤 침묵하던 헬드는 지난 주말 온라인 토론매체인 오픈데모크라시에 ‘순진함, 결탁, 또는 조심스런 관여?’라는 제하의 해명문을 발표했다. 그는 세 차원에서 문제를 분석한다. 첫째, 독재정권과 상대하는 것이 순진하고 얼빠진 짓인가? 아니다. 어떤 독재정권도 완전히 한 덩어리일 수는 없고 언제나 조금이라도 정치적 공간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내부 개혁을 위한 통로를 마련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둘째, 독재정권과 상대하는 것이 결국 그 정권의 수명만 연장시켜 주는 결탁행위가 아닌가? 아니다, 그런 이유로 만남 자체를 원천차단하면 독재정권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어진다. 사이프가 카다피재단을 통해 리비아 내정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려 노력했던 게 사실이다. 셋째, 조심스런 관여(cautious engagement)는 독재정권의 개방을 위한 노력에 여전히 유용한 방식이다. 독재정권을 상대하는 데 따르는 위험이 전혀 없을 수는 없고, 작금의 사태가 대단히 유감이고 비극적이지만, 포용을 지지하는 입장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헬드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이 곧바로 나왔다. 놀랍게도 민주주의 이론의 또다른 전문가인 시드니대학의 존 킨이었다. 킨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헬드가 지식인의 헛된 자부심과 지적 허영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독재정권에 놀아난 것이 아닌가(‘쓸모있는 바보’), 과거 냉전 당시에도 서방의 민주진영에서 소련의 반체제인사들을 돕기보다 소련체제 내의 개혁세력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고들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된 셈이 아닌가, 독재정권은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고 ‘철옹성 같은 단일함’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런 체제와 상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킨은 더 나아가 헬드의 처신이 민주주의 학계 전체를 욕보였다고 힐난하면서 헬드가 주장한 민주주의, 글로벌 거버넌스, 시민사회 등의 개념 때문에 오늘날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성토한다.
이번 논쟁을 보노라면 독재정권을 파악하는 태도가 보수적 거부론과 진보적 대화론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민주진영 내에서도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의 균열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맥락을 짚는 것도 중요하다. 신노동당은 포용정책을 펴면서 블레어가 2004년에 카다피를 직접 만난 뒤 영국의 경제계, 문화계, 학계에 리비아와의 교류를 권장하였다. 그리고 대학의 시장화 추세도 한몫을 했다. 외부 연구기금을 끌어오는 일이 실제 연구보다 중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외부 기금의 성격을 엄밀하게 따지지 않게 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주요 대학 중 아랍 독재국가들로부터 기부를 받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 독재정권의 불변성을 이유로 모든 대화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태도가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도 던져야 하겠다. 리비아의 참담한 결과만을 놓고 과거의 포용정책 전체가 과오였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며, 포용정책이 없었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단, 포용정책을 지지하더라도 그것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서는 단기적인 연착륙·경착륙의 공리적 관점이 아니라(두 경우 모두 가능하다), 장기적인 확률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신중·투명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의 처신과는 별개로 문제의 궁극적인 관건은 결국 그 체제의 행보에 달려 있다. 카다피가 쓴 <그린북>의 제1권 <민주주의의 해법>에는 폭력혁명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폭력과 힘을 통한 변혁은 그것이 설령 반민주적 조건에 반발해서 나타났다 하더라도 반민주적인 변혁에 불과하다. 기존의 통치체제를 그대로 둔 채 통치수단만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그러므로 전통적 민주체제의 모순을 영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민의 권위체제”를 수립하자고 역설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제기되는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
(한겨레. 201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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