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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시장 부양론과 거품 붕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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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2-20 09:34 조회21,9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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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는 15일 수도권의 토지거래허가구역 2,408평방킬로미터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전체 국토 면적의 2.4%, 지난해 해제 면적의 15배에 이른다. 여기서는 시ㆍ군ㆍ구의 허가를 받지 않고 토지를 거래할 수 있게 하고, 이미 취득한 토지의 이용의무도 소멸시키는 것이다. 거래를 촉진하고 가격이 오르는 효과를 가져온다.

지금은 부동자금이 600조원을 넘어섰고 주식시장도 들썩이는 상황이다. 자칫 부동산시장을 자극할까 우려된다. 규제를 강화하는 데는 물론 규제를 완화하는 데도 정부 실패가 있을 수 있다. 정부가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정부는 작은 폭이지만 땅값 내림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을 근거로 행동한 것 같다. 정부 행동의 근저에 가격 하락에 대한 조바심과 시장부양 의지가 있지 않나 걱정이다.

소설 <강남몽>의 인식구조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시장 부양론과 거품 붕괴론이 그 것이다. 이 두 시각의 시장 전망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려는 충동을 갖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품 붕괴론은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니 향후 가격 폭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거품 붕괴론에서는 개인들에게 부동산을 사지 말고 파는 것이 유리하다고 권고한다. 개인은 물론 정부도 부지불식간에 거품 붕괴론의 영향을 받는다. 노무현 정부는 '버블 세븐'을 지목하면서까지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려고 했다. 그런데 진정 가격 폭락을 걱정한다면 정부는 가격을 떠받치는 쪽으로 무리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시장 부양론과 거품 붕괴론의 근저에는 한국경제의 기초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드리워 있다. 버블 세븐과 수도권, 나아가 한국자본주의의 성장 자체를 거품으로 보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과실 위에 서있지만 그 것의 붕괴를 예감하고 걱정한다. 이러한 인식구조를 보여주는 전형적 소설이 황석영의 <강남몽>이다.

황석영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강남으로 상징되는 한국자본주의는 재생산구조를 갖추는 순간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1995년 무렵 한국자본주의가 스스로 재생산구조를 갖추는 시기지만, 또한 현실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몽'(夢)이라는 것이다.

<강남몽>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은 복부인, 백화점주인, 건설업자, 부동산업자, 조폭 두목 등인데, 이들의 전직은 화류계 여인, 밀정, 정보요원, 백수, 지방 건달 등이다. 이들을 통해 본 강남의 탄생은 탈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폭력적 과정 그 자체다. 그렇다면 강남과 함께 성장한 한국자본주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강남, 수도권, 한국경제의 발전에는 다른 스토리도 있다. 서울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도심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3저(低)호황 이후 고도성장으로 그간 억제되었던 소비가 분출했다.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유통권역이 팽창했고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었다. IT산업의 발전과 벤처신화가 이어지면서 신산업에 기초한 도시 공간이 구축되었다. 문화적으로는 수평적 개인주의와 수직적 집단주의의 격렬한 충돌이 시작되었다.

정부 개입에 신중해야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는 동아시아의 '대역전'(great reversal)이 있다. 19세기 초까지 서구는 동아시아에 대해 우위를 드러내지는 못했다. 서구가 한발 앞서 산업혁명을 수행함으로써 이뤄진 '대역전'은 19세기 중반에야 현실화했다. 이후 서세동점이 이어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형세는 또 달라지고 있다. 동아시아는 압축적 성장을 경험했고, 도쿄 서울 상하이는 인적자본·학습역량·혁신능력의 사이트로 재탄생했다.

시장 부양론과 거품 붕괴론은 지나친 불안과 불신을 공유하고 있다. 섣부른 가격 전망과 정부 개입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 정부는 신중해야 한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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