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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선(線)의 대립에서 면(面)의 공동이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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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2-11 14:39 조회22,1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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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반도 서해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의 여파로 2011년에 막 들어선 지금도 팽팽한 긴장이 여전히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휘감고 있다. 그나마 1월 미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절충적 합의가 이뤄지고 그에 부응해 남북회담이 재개될 듯한 조짐이 보여 다행이다.

 

이런 착잡한 정세 속에서 힘겹게 화해의 싹을 키우고 있는 개성공단의 현황을 얼마 전 듣고 반가웠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쓴 컬럼(한겨레신문 1월 31일자)에 따르면, 전쟁의 문턱까지 갔던 지난해에도 입주업체들은 “북한의 위협을 받은 적이 없”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대부분이 이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뜻밖의 소식이었다.

 

공단이 천안함 사태 이후 ‘국민보호’라는 구실을 내건 당국의 강한 통제를 받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신규투자가 중단되었고 남쪽의 상주인력이 900명에서 500명으로 줄었으며 물자와 인력의 통행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122개 업체가 가동중이며 4만6천여명의 북한 근로자가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있다 한다. 공단 확대를 막아온 현 정부 3년 동안 규모가 갑절로 커졌다는 놀라운 얘기도 있다. 그러니 국민의 안전이 정말 염려된다면 차라리 공단을 철수하는 게 낫지 왜 '국민보호‘를 위해 제약만 가하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고려․조선․식민지를 거치는 긴 기간 한반도 및 중국을 포함한 세계로 열린 국제 교역도시였던 개성은 분단체제 속에서 예외적으로 폐쇄되었으나 분단체제가 흔들리면서 그 역사적 위치가 복원되고 있다. 생생한 증거가 2002년부터 남북 주민들의 공동생산 공간이 된 공단이다.

 

공단은 남북경협이 단순교역과 위탁가공 중심의 초보적인 수준에서 직접투자 국면으로 전환하여 남측의 자본·기술과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한 직접 투자 형태로 운영된다. 남북한의 상호이해와 문화적 이질성의 완화, 그리고 제도협력은 향후 경제협력의 심화와 경제통합의 기반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중시된다.

 

상호호혜적 분업구조의 정착은 장기적으로 개성-서울-인천을 잇는 복합경제특구의 꿈을 키우게 한다. 이미 존재하는 개성공단이라는 맹아적 형태는 한반도경제권은 가시화하는 단서이다. 이같은 특구의 점진적인 확대를 통해 남북의 경제가 각각의 국민경제로서 자율성을 갖는 동시에 교류협력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으로 나아가는 단계 즉 한반도경제권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되기도 한다.

 

지금은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매우 위축된 상태이나 이런 엄혹한 남북관계 속에서도 개성공단은 조업중이다. 이 존재야말로 분단체제의 와해가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입증하는 소중한 증거 아닌가.

 

여기서 눈을 동아시아로 넓히면 또 다른 화해의 싹을 만날 수 있다. 2009년 4월 15일 타이완 동부 세 도시(花蓮․宜蘭․台東)와 오끼나와 주변 섬(八重山諸島의 石垣市․竹富町․與那國町)의 행정책임자들은 ‘관광경제권 국경교류추진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오끼나와와 대만의 일부 도시가 합의한 ‘관광경제권’이 태동한 것이다. 그 지역은 센까꾸열도(尖閣諸島, 중국명 釣魚島땨오위따오) 주변을 포괄한다. 작년 9월 중국의 트롤어선 민진위(閩晉漁)호와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충돌해 다시 주목 받은 분쟁지역이다. 그곳을 평화와 번영의 지역으로 바꾸려는 것이 바로 ‘관광경제권’ 구상이다. 아직은 출입국관리 문제 탓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만 느슨해지면 국경을 가로지르는 도시공동체가 형성될 터이다.

 

이 두 개의 사례는 경이란 선(線)을 둘러싼 대립을 면(面)의 공동이용을 통해 국경․영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발상의 힘을 일깨워준다. 이런 작업들이 크든 적든 동아시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된다면 그만큼 평화와 화해의 동아시아 미래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를 앞당길 추진동력은 각각의 사례가 국가개혁 작업으로 이어지는 데서 얻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의 발전이 분단체제극복운동과 결합해야 한다. 또한 ‘관광경제권’이라는 과제의 원활한 수행도 (외부권력들에 의한 복합적 중압의 역사를 가진) 오끼나와의 자치권 강화를 통해 일본국가 개조로 이어짐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당장은 개성공단이 헤쳐나아가야 할 한반도의 긴장 상황도 만만치 않다. ‘관광경제권’도 일본 민주당정부의 방침과 대치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난 12월에 발표된 신방위대강이 오끼나와와 그 주변도서를 군사기지로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를 또다시 분열시키는 신냉전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길인가를 선택할 기로에 동아시아인은 서 있다. 그 선택을 위해 서울이나 평양도 아니고 토오꾜오나 베이징도 아닌 생활세계의 현장 개성공단 및 오끼나와(와 그 주변 섬들)에서 생활할 권리를 요구하는 소리에 먼저 귀기울여 보자.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서남통신. 201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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