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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국민에 대한 최후통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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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9-03 08:19 조회21,3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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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앞날은 없다. 끼리끼리 해먹고 임기가 끝나 떠나면 된다는 식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면 절대 이런 인사는 안 했을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이 아깝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도한 언론사의 댓글 게시판에 달린 한 시민의 독백이다. 우연이지만 국치 100년의 기억과 현재 집권 엘리트들의 부도덕성이 겹쳐져 더욱 착잡해진다.

역사는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엘리트들은 권력자원을 사유화하고 대중은 이에 분노하는 것일까? 왜 아이들보기 낯 뜨거운 '죄송' 청문회가 반복되는 것일까? 표준적인 경제학자들이라면 이렇게도 생각할 것이다. "이들의 이상한 행동에는 일정한 '합리성'이 존재한다. 이들은 나라와 국민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좇는 '이기적' 인간의 모습이다."

불공정한 고위공직 배분

지금의 상황을 집권세력과 국민들 사이의 게임으로 생각해보자. 선거가 끝나자 집권 측은 공직을 배분하고 국민은 그러한 제안 또는 결정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되었다. 이는 배분자와 수령자 사이에 벌어지는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의 상황이다. 배분자가 최후통첩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있다. 이는 '독재자게임'(dictator game)으로, 배분자는 냉정하게 자기만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다.

독재자게임에서 집권 측이 사적인 자기이익에만 충실하여 가치를 배분한다고 가정하면 두 가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집권자는 국민에게 영(0)에 가까운 가치를 제안한다. 자신들의 사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둘째, 국민은 아주 작은 이익이라도 자기 몫으로 제안되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거부권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작동되는가? 행동과학자들이 실험을 해보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카너먼 등은 1986년 161명의 학생에게 20달러를 주고 독재자게임 실험을 했다. 수령자들에게 거부권을 주지 않고 배분자들이 최후통첩을 하게 했는데, 그들 중 76%가 20달러를 공평하게 나누었다.

경험적 관찰에 의하면 시장 거래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배분자로 여겨지는 것을 꺼리는 심리가 있다. 정치는 공적 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공정성의 개념을 더욱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에 등장한 공직 후보자나 이들을 기용한 집권 측의 행동은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이들의 이기적 행동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것에 속한다.

정치인들은 평소 국민을 대단히 받드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니 수령자들, 즉 보통의 국민에게 거부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는 전형적인 최후통첩게임 상황으로, 1982년 독일의 경제학자 귀트 등이 고안한 실험이다. 여기서는 수령자가 배분자의 제안을 거절하면 양측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고 규칙을 정했다. 여러 나라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배분자가 가장 흔하게 제안하는 것은 50%를 나누는 것이고, 대부분은 30% 이상을 제안했다고 한다. 수령자들은 소수만이 20% 미만의 배분을 받아들였고, 대부분은 30% 미만의 배분에 대해서는 거절했다.

이기적 권력 사유화에 분노

현실에서는 시장에서나 정치 영역에서나 협상이 흔하게 이루어진다. 고위 공직이라는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도 집권 측과 국민 사이에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 협상에서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공정성보다는 이기심을 앞세우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나름대로 합리성을 강변할 수도 있으나 보통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다. 공정성을 잃고 자원배분 권한을 사유화하는 것, 이것이 대중이 분노하는 이유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인색한 최후통첩에 대해 수령자들은 무척 단호하게 행동한다는 점이다. 실험에서 그들은 보통 이렇게 말했다. "됐소, 당신이나 몽땅 먹고 잘 사시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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