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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김탁구와 신한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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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9-27 13:29 조회21,4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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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두 젊은 동업자를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요즘 우리는 성공한 후에라도 서로 배신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을 주목시켰던 이야기 두 개가 그들의 뇌리에 깊이 남았던 모양이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시청률이 무려 50%에 육박했다고 한다. 주인공 이 역경을 딛고 제빵업계 1인자로 성공한다는 상투적 줄거리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도 출연진의 훌륭한 연기와 복잡한 인간관계가 화제를 불렀다. 동업 젊은이들에게는 드라마 속의 구일중 회장과 그의 심복 한승재 비서실장의 인간관계가 파탄 나는 과정에 특히 마음이 쓰였던가 보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현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이 현실의 이야기다. 신한은행이 전 은행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것이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현 은행장은 "은행의 백년대계를 위해 부정과 부도덕한 행위를 뿌리 뽑고자 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시중에서는 대체로 1인자와 3인자가 연합하여 2인자와 권력투쟁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젊은 동업자들도 신한금융 회장과 사장의 30년 관계가 자폭하는 것을 침통해했다.

이번 사태로 신한은행은 물론 금융산업 전체의 신뢰와 자부심이 큰 상처를 입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언급했다. 신한은행 3인방의 동반 퇴진이 불가피해 보인다. 나아가 경영진의 전횡을 제어하는 방향의 은행지배구조 개편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다.

드라마와 현실 중 어느 것이 더 그럴 듯한 이야기일까? <제빵왕 김탁구>는 선악의 구도가 분명했고 배신자인 악인이 몰락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결말이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굶어 죽고 도척(盜跖)은 천수를 누리기도 한다. 오죽하면 사마천이 <사기열전> 첫 머리에 백이숙제 이야기를 쓰면서 "만약 이 것이 천도(天道) 라면, 천도는 과연 맞는 것인가 틀린 것인가"하고 한탄했을까.

신한은행 경영진은 편을 갈라 서로 배신했다. 그 결과가 공멸로 이어지면 더욱 그럴 듯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의 전형적 사례다. 개인은 최선의 선택을 했으나 전체로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1950년 앨버트 터커가 강연에서 처음 언급했다. 그는 경찰에서 따로 조사받는 두 범인 이야기를 꺼냈다. "무장강도 혐의로 잡혀온 두 명의 용의자가 있다.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잡범으로 기소되어 1년 징역형을 받는다. 누구라도 먼저 강도행위를 자백하면 그는 풀려나고 다른 이는 5년 형을 받는다. 둘 다 자백하면 둘 다 3년형을 받는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 모두 서로 배신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된다."

죄수의 딜레마는 터커의 프린스턴대 지도학생이었던 존 내시라는 천재의 박사논문의 핵심 내용이었다. 내시는 게임 참여자들이 철저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다자간 게임이론을 만들어냈다. 내시가 협조게임에서 비협조게임을 분리해낸 것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비루하지만 생동감 있는 삶의 현실을 극적으로 모형화한 것이다.

모두가 배신자로 살지는 않아

왜 대부분 사람들이 신한은행 사태에 안타까움을 느낄까? 그것은 사람들이 모두 배신자로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로버트 쿠르즈반과 대니얼 하우저는 사람들이 공공재 운영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는 공공재게임 실험을 해보았다. 게임을 반복한 결과, 13%는 계속 협조하고 20%는 계속 배신했다. 63%는 다른 사람들이 협조한다면 자신도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호모루두스>에서 인용).

세상에는 배신자도 있지만 협조자도 있고 협조에 보답하는 이도 있다. 김탁구 같은 이도 찾을 수 있고 그를 따르려는 이들도 많다. 동업자들이여, 그러니 너무 울적해 할 것 없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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