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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네덜란드 학술대회 ‘인권 난상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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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1-13 07:46 조회21,7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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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하순 네덜란드의 흐로닝언(그로닝엔)대학에서 개최된 국제인권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전 지구적 일치와 다양성’이라는 주제 아래 네덜란드, 미국, 영국, 독일, 터키, 그리고 한국에서 온 12명의 연구자들이 논문을 발표했다. 대회의 진행 방식이 다소 이색적이었다. 모임 한 달 전에 완성된 논문을 미리 제출하게 하였고,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모든 논문들을 다 읽은 상태에서 모였다. 발제자가 먼저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자들이 먼저 논평을 시작했고 그다음 발제자가 응답을 한 후 청중들과 자유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논문을 미리 읽고 와서 토론에 임하니 당연히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나는 하필이면 첫날 첫 시간의 첫 발제를 맡게 되어 그렇지 않아도 긴장이 되는 판에 두 토론자가 워낙 날선 비판을 해서 이러다가 산 채로 잡아먹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청중석에서 토론자들의 논평을 거세게 역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양쪽이 열띤 논쟁을 벌이는 통에 정작 당사자는 싸움을 구경하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어쨌든 맨 먼저 매를

맞고 나니 나머지 일정은 편한 마음으로 논의에 참여하여 많은 생각거리를 메모할 수 있었다.

 

그중 흥미 있게 느꼈던 점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모든 발제자들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후 다른 나라 참가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칙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강조하기보다 당면한 문제 중심으로 인권에 접근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 누구도 인권의 ‘보편성’을 미리 전제하거나 그런 지위를 선점했다고 가정하고 발언하지 않았다.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다. 현재 유럽 각국이 겪고 있는 이주 현실, 특히 이슬람권 이주자들의 문제가 회의 내내 심각한 쟁점이 되었다. 네덜란드를 위시하여 스웨덴, 덴마크 등 사회 분위기가 자유분방하다고 알려진 나라에서도 이주자들이 늘면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유권자들이 우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제가 나빠지는 와중에서 외국인들이 복지혜택을 공짜로 즐긴다는 불만이 폭넓게 유포된 것이 사태 악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보다 더 깊은 이유로 정치이념의 문제가 있다. 개인 및 소수집단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그리고 다수결 원칙에 의한 민주주의가 개념상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해 결합한 것이 오늘날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인데, 이 사상이 이주자들의 대량 유입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외부에서 언론을 통해 막연하게 느끼던 것보다 유럽 각국이 훨씬 더 심각하게 현 상황을 고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 좌파 정치인 참석자는 유럽 전체의 민주사회주의 또는 사민주의 정치기획의 요체였던 분배와 복지에 인권이라는 기둥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코즈모폴리턴 세계주의의 설익은 이상주의를 경계하는 소리도 많이 들렸다. 또한 다문화 담론이 의도는 좋았지만 정책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지적도 있었다. 국가적·민족적 정체성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도 계속 문젯거리로 등장했다. 집단의 정체성 운운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 집단 전체에 본질주의적 라벨을 붙이는 셈이 된다는 비판과, 그렇다 하더라도 집단 간의 문화적 차이란 게 존재한다는 입장이 충돌했다. 다루는 이슈의 성격상 국제적·세계주의적·다문화적 성향이 강한 인권계에서 이런 논쟁이 나왔다는 점 자체가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2008년을 기점으로 경제지구화의 기세가 많이 꺾였듯이 지구화 담론을 전제로 해서 제기되었던 여러 이상주의적 해법들 역시 상당한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았다. 첫째, 이른바 ‘보편성’이라는 주장도 경제·사회 조건으로부터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보편주의를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막상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이주자들의 인권을 전처럼 주장하기가 어려워지니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상적으로 보면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인권을 무조건 옹호해야 옳지만 목전의 현실이 변했으므로 새로운 논리 개발이 필요해졌다는 식의 태도가 엿보였다.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인권의 실천에 있어 양보할 수 없는 최저한을 어느 선에서 정할 수 있을까?


둘째, 개별 집단의 정체성과 전체 사회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 같았다. 이상주의자들은 사회의 주류집단과 이주집단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가정해 왔지만 그것이 점점 비현실적인 희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별 집단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사회통합을 이뤄낼 묘안이 무엇일까?

 

셋째, 우리 바깥의 세계가 극심한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사상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때 우리의 지성계나 시민사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서구의 사조를 따라가기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근대의 기본가치, 곧 자유와 평등과 연대, 그리고 민주주의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문제를 주체적으로 깊이 성찰할 때 우리의 맥락에 맞는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를 진정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면 다문화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이주자, 소수자들이 평등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인권을 보장받는 데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될 것이다. 이런 자세로 학문과 실천에 임한다면 외국의 지적 동향에 무조건 보조를 맞추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근대의 보편성을 감당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과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효제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한겨레. 201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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