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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삼성과 북한, 이건희와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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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4-21 10:04 조회21,2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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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이번호 광고에 이런 문구가 실렸다.

 

“이 나라의 국기엔 별이 있습니다. 암만 봐도 왕국인데 공화국이라고 우깁니다. 권력을 2대째 세습했고 3대째 세습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3대가 영 신통치 않아서 골치가 아픕니다. 최근 석연치 않은 이유로 왕이 모습을 감췄다 나타났습니다. 나라가 아예 한 가족입니다. 왕이 ‘친애하는 어버이’입니다. 조직을 싫어합니다. 조직하면 호적에서 파버릴 기세입니다. 사상교육을 좋아합니다. ‘열렬한 신념’으로 충성하랍니다. 이 나라는 어디일까요? 북한? 삼성? 몰라 몰라∼”

 

삼성을 북한에 날카롭게 빗댄 글인데, 사실 삼성과 북한을 그것을 운영하는 가문으로 좁혀 보면 유사점은 더욱 선명해진다. 3대에 이르는 세습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역들의 생애사가 특히 그렇다. 이병철은 1910년생이고 김일성은 1912년생이다. 둘 다 한일병합의 시기에 태어나 각기 기업가의 길과 혁명가의 길을 걸었다. 두 창업자가 투신한 분야가 달랐기에 두 가문의 행로가 많이 달랐지만, 두 영역 모두 모험적인 동시에 치밀한 운신의 능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공통된 바가 있다.

 

둘은 모두 해방이 가져다준 엄청난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했고 사회적 자원의 거대한 찬탈에 힘입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성공의 크기 면에서 이병철을 김일성에 견주긴 어렵다. 하지만 이들이 지향한 방향은 유사하다. 김일성이 조기에 정치적 독점에 이르렀다면, 이병철은 더 길고 어려운 경제적 독점의 길로 나아갔다.

 

이병철과 김일성의 유업은 각기 1942년 동갑내기인 이건희와 김정일에게 세습됐다. 선대의 카리스마를 조금은 분유한 상태로 출발했지만, 2세들의 능력은 전대에 못 미쳤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족분을 유훈으로 보충했다. 김정일의 유훈통치와 피고용인이 근대적 권리주체임을 부인하는 이건희의 무노조주의가 그런 것이다.

 

확실히 2세 시기의 성취에서는 이병철의 가문이 앞선다. 하지만 이 성취의 차이는 선대의 성취의 차이만큼이나 세계사적인 냉전과 남한과 북한이 각기 선택한 발전 경로라는 역운과 연결된 것이다.

 

그 2세들은 지금 상속에 부심하고 있다. 아마도 한쪽에 3남에게 왕국을 전하려는 장남이 있고, 다른 한쪽에 장남에게 물려주려는 3남이 대칭적으로 있는 것은 그저 우연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3세의 능력이 2세의 능력보다 훨씬 더 의심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3세들은 가신이나 친위세력에 둘러싸여 군림하지만 통치할 능력 없는 군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상속이 그것을 둘러싼 사회에 안겨주는 부담도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통제된 이행의 필요성으로 인해 사태가 간단치 않긴 해도 아무튼 세습체제로 인해 개방과 사회적 개혁이 지연됨으로써 주민의 고통은 나날이 격심해지고 있다. 남한의 경우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듯이 삼성에 의해 국가기구가 광범위한 부패의 사슬 속에 깊이 끌려들어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근현대사를 통해 남북한 모두 찬탈의 시대를 경유했고 이제 상속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이 상속에의 열정은 재벌에서 촌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이며, 유난한 교육경쟁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도 그것이 참을 수 있는 경계 안에 있을 때 사회는 뿌리로부터 썩어 들어가지 않는다. 이병철 가문이 문어처럼 남한 사회를 칭칭 감고 모든 부면에 빨판을 들이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남한은 활력과 정의감을 상실한 퇴영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0.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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