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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일본의 복지국가 건설비용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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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9-14 16:27 조회21,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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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와 80년대에 성공적으로 운영되던 일본형 복지사회는 저성장과 고용악화로 점철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소위 ‘잃어버린 20년’ 기간 동안에는 그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이에 사회통합의 위기를 감지한 자민당 정부는 국가복지를 확대해나갔다. 그러나 그것이 격차사회로의 추락을 막아낼 정도로 대대적이거나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다. 결국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계속 심화돼갔고 그것은 54년만의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새로 들어선 하토야마의 민주당 정부는 일본을 당장 유럽식 복지국가로 만들어갈 듯이 획기적이고 과감한 복지정책 구상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소위 ‘제3 성장의 길’이라는 일종의 ‘복지 성장론’으로까지 연결되었다.

 

그러나 일본 국내외의 많은 평자들은 복지국가 일본의 재탄생은 민주당의 ‘좋은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지적을 했다. 실현 능력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사실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재원마련 능력이다. 민주당의 복지 구상들은 하나같이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예컨대, 어린이 1인당 월 2만 6천 엔을 중학 졸업 시까지 약 15년간 지급하겠다는 민주당의 대표적 사회보장정책인 ‘어린이수당’의 도입에는 연간 약 5.5조 엔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는 일본의 연간 방위관계비 예산이나 문교 및 과학기술진흥비 예산을 상회할 정도의 거액이다. 국민연금과 후생연금을 소득비례방식의 연금제도로 일원화하고, 거기에 최저보장연금제를 적용하겠다는 것도 기존의 소비세(세율 5%)를 전액 사용해야 비로소 실현 가능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개혁 방안이다. 최저한의 급부수준을 월 약 7만 엔으로 잡고 있는데, 이 정도의 급부 수령이 어려운 모든 저소득층에게는 정부가 그 차액을 보장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용보험의 수급이 끝난 실업자 등에게 구직 시까지 직업훈련을 받는 기간 동안 월 최고 10만 엔 정도의 수당을 지급하는 구직자지원법안은 연간 약 5천억 엔 이상의 예산을 요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1천 엔으로 올리겠다는 개혁안도 큰돈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될 경우 경영기반이 열악한 중소영세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데, 민주당은 이를 위해 약 2천억 엔 규모의 중소기업 조성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고속도로 무료화(1.3조 엔), 개호노동자 임금 인상(8천억 엔), 고등학교 수업료 감면(5천억 엔), 출산보조금 지급(2천억 엔) 등은 모두 훌륭한 복지정책들이기는 하나 그에 상응하는 재원 마련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물론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당시의 계산에 의하면 민주당의 복지 구상 실현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비용은 2013년도 기준 연간 약 16.8조 엔이다. 이는 2008년도 국가예산인 83.1조 엔의 약 20.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이 거액을 공공사업, 인건비, 보조금 등에서의 불필요한 예산 삭감을 통해 9.1조 엔, 특별회계에 누적되어 있는 잉여금이나 적립금 등의 매장금 사용과 정부재산의 매각 등에 의해서 5조 엔, 그리고 (증세 아닌) 세제 개정을 통해서 2.7조 엔 등을 염출함으로써 조성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증세 없는 세출삭감의 노력은 자민당 정권하에서도 2000년대 내내 강조되어 왔던 것이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도 특별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사실 구체성이 결여된 이러한 재원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상당했다. 당내의 소위 ‘재정 중시파’들은 복지 강화가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추진해갈 일이라고 역설했다. 2010년 6월 하토야마의 뒤를 이은 간 수상은 자신의 내각에 이들 재정 중시파들을 대거 입각시킴으로써 민주당의 복지구상에 상당한 수정이 가해질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바로 복지정책의 축소와 증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우선은 재정 부담이 가장 큰 어린이수당에 대하여 전액 지급 포기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11년부터 증액은 하되 원안대로 월 2만 6천 엔씩 현금으로 지급하지는 않고 현물이나 서비스 등으로 대신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고속도로 무료화 정책에 대해서도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대폭적인 수정이 필요함을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행 5%인 소비세를 10%로 올리는 방안을 공론화했다. 증세를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간 정부는 결국 전임 하토야마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구상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나서부터 ‘진짜 문제’에 직면했다.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여 증세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간 수상의 접근은 순진하거나 무모한 방식이었다. 그는 국민의 다수는 복지국가의 건설을 원하는 동시에 재정건전성의 유지를 바라고 있으므로 적절한 증세 정책은 폭 넓은 지지를 받으리라고 믿었었던 듯싶다.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그는 소비세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거결과는 민주당의 대패였다. 직접적 원인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듯이 간 수상의 소비세인상론이었다.

 

민주당은 현재 풀기 힘든 딜레마에 빠져있다. 사회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주도의 복지강화가 필수이다. 그것은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건설비용, 즉 증세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이 저항한다. 복지국가 일본의 미래는 민주당 정부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음 회에서 그 어려움을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서남통신. 2010.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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