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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우리에게 중국이란 무엇이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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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0-27 23:28 조회21,4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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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G2 또는 Chiamerica로 불릴 정도로 세력이 커진 중국,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하는 중국의 동향이 바로 그 이웃에 위치한 한국의 오늘과 내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커진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폭넓은 합의가 존재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일단 그렇다고 답하겠다.

 

1992년 국교를 수립한 이후 날로 밀접하게 발전한 한중 관계가 이명박정부 들어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까지 승격했다지만, 체감으로 느끼는 사실상의 양국관계는 사뭇 서먹해진 것 같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으로부터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 훼방꾼'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최근 주장한 것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그 진상이야 어떻든 지금의 한중관계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불행한 스캔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중국이 우리가 멀리할 수 없는 긴요한 존재임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수긍한다. 보수적 논조를 지켜온 한 언론인도 “우리에게 중국은 안보로는 위협적 존재이지만 경제적으론 필요한 존재다. 적어도 몇십년간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중국의 물결을 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중·일의 갈등에서 우리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우리 내부가 친중, 친미로 갈라지는 날 우리는 구한말 신세가 되는 것이다.”(문창극, 「알면서 당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2010. 10.5)고 역설한다. 이 주장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중 관계가 아무리 밀접하게 발전하더라도 그 안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북한과 한미동맹의 존재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데 비해, 한국은 한중관계를 한반도 차원에 한정시켜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주기를 기대하는 구도이다. 그러니 친중(또는 用中)과 친미(또는 用美)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원칙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에서 우리 사회가 합의를 보고 있다손치더라도, 단기적 또는 중기적인 북한정책(내지 통일정책)에서 입장이 갈리는 한 중국에 대한 입장도 분열되기 십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친미와 친중의 균형을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테라시마 지쯔로오의 발상을 참고해볼 가치가 있다.

 

그는 미국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아시아를 중시할 것인가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진행해야 하는 전략임을 친미입아(親美入亞)의 길로 표현한다. 친미란 미국에 과잉 의존하는 틀로부터 탈피해 미일동맹을 재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경제에서 협조관계를 심화하고(미일자유무역협정), 안전보장에서 미일의 군사협력관계의 계속을 전제하면서도 ‘주일미군기지 없는 안보’ 및 대외 ‘비핵경무장 경제국가(非核輕武裝經濟國家)’의 기축을 지키는 전략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입아’에서 아시아는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것이다. 그는 일본이 이미 대중화권을 중핵으로 하는 아시아와의 무역으로 밥을 먹는 시대에 들어서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중시하자고 한다. 요컨대 ‘일ㆍ미ㆍ중 트라이앵글’ 강화론이다. (좀더 상세한 내용은 寺島實郞․ 백영서 대담 「세계를 아는 힘, 동아시아공동체의 길」, 『창작과비평』, 2010년 여름호)

 

그의 이런 주장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주장하면서 오끼나와의 주일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들고 나온 하또야마 전총리의 시도가 좌절함에 따라 당장은 현실적 실현가능성이 줄어들고 말았다. 그만큼 동아시아질서의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겠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친미와 친중의 균형을 역동적으로 추구하는 길을 찾기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경제영역에 한정하거나 아니면 중국 의존도를 상쇄하기 위해 인도, EU, 중남미 심지어는 아세안, 중앙아시아를 끌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개선되가던 중일관계가 센가꾸(다오위다오) 문제로 냉각된 데서 드러나듯이 ‘연동하는 동아시아’의 오늘은 중국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찾아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에게 ‘친미입아’의 길은 여전히 중요한 선택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어렵더라도 친미와 친중의 균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온전히 살려나가야 한다. 만일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중국의 물결을 타”면서도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든다면 이를 모를 리 없는 중국을 상대로 우리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실을 다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쯤해서 친미와 친중 사이의 균형을 제대로 잡고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방안에 대한 내 생각을 밝혀보자. 그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체적 해결 능력을 강화하려는 끈질기고도 창의적인 노력이다. 북한을 궁지로 몰려고만 한다면 북한의 안정을 대외정책의 주요 과제로 삼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북한은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남북이 스스로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풀어갈 능력을 갖추게 될수록 미중간의 협상이나 합의에 의해 한반도 문제가 결정되는 비극을 피함은 물론이고 중국과 미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자를 적절히 활용할 공간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 전체를 시야에 넣는 일상적 훈련이 긴요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항구적인 분단 상태에 머물면서 교류협력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통일하는 것도 아닌 (615 공동선언에 담겨 있는) 국가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재통합하고 거기에 걸맞는 내부 개혁을 남북이 각각 추진하는, 한층 더 인간다운 삶을 향해 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만이 북한 주민들이 중국을 선택하지 않고 같은 민족인 우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 전체 주민으로 넓혀진 ‘우리’는 중국의 바람직한 변화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보다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적극적인 질문을 던진 것은 바로 중국이란 거울에 반사되어 우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서남포럼. 201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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