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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김제동을 지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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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0-14 09:09 조회25,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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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진짜 ‘스타 골든벨’에서 물러났대.”

“그 정도로 방송에서 짤리다니 정말 이게 무슨 민주주의야?”

 

엊저녁 버스 안에서 20대 청년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입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슬금슬금 퇴행한 민주주의는 이제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듯합니다. 공안대책회의가 부활하고, 군의 민간인 사찰이 재개됐으며, 연좌제까지 부활하려는 참입니다. 방송장악을 위해 방송법을 날치기 처리한 것도 모자라, 비판의식이 있는 예능분야 방송인까지 쫓아냅니다. 윤도현·신해철씨가 이미 밀려났고, 이젠 김제동씨가 쫓겨났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1980년대식 ‘땡전뉴스’도 부활할 듯싶습니다.

 

그런데 김제동씨가 무슨 잘못을 했지요? 그는 “독재도 반독재도 모른다”며 상식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먹고살 게 없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건 절규지 폭동이 아니다”라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대사에 공감하고 “국민은 계몽과 협박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대상”이라는 게 그의 상식입니다. 아파트 앞에 매니저의 차가 대기하는 오늘의 부유함이 여관방조차 없어서 떨던 때를 잊게 할까 두려워 우울증에 걸리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출발했던 자리를 잊지 않겠다”는, 그의 연기대상 수상 소감은 진솔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한 ‘잘못’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때 사회를 본 것,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사회적 약자를 생각해보자고 말한 것, 노무현재단 설립 공연 때 무대 설치를 도운 것이 전부입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그걸 정치활동이라고 문제 삼는 일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입니다.

 

이런 사태가 빚어지는 일차적 원인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이 정권의 천박한 인식이고요. 자리를 보전하려는 인사들이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 멋대로 칼춤을 추면서 벌이는 과잉충성이 그다음 이유쯤 되겠지요. 그러나 김제동씨가 그들의 무딘 칼춤의 희생자가 된 데는 우리의 탓은 없을까요? 정권의 속성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주고, 그들의 불의를 알면서도 눈감고 외면함으로써 민주주의 퇴행의 길을 터준 우리의 책임 말입니다.

 

어린 시절 유대인 대학살 이야기를 들으며 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저항없이 순순히 가스실로 끌려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의문이 최근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이란 책을 읽고 풀렸습니다. 저자 스탠리 코언은 집단적 부인의 기제로 이를 설명했습니다. 학살이 풍문에서 사실로 바뀌어도 피해 당사자들조차 “지역 군 책임자가 저지른 예외적 사건일 거야. 여기는 유럽인데, 무고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어찌 일어날 수 있겠어”라고 외면한 데는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 부인의 기제가 작동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의 사태를 유대인 대학살에 비교할 순 없습니다. 다만, 김제동 사건을 외면하는 데도 진실을 외면하고픈 부인의 기제가 작동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침묵은 그의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용인이자, 우리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수용이고,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용인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김제동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제 버스에서 만난 젊은이들이나 김제동 하차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수많은 네티즌들 역시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런 우리들이 연예 프로그램 하나를 볼 때도 단순한 방송 소비자를 넘어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비판활동에 나선다면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0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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