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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노무현의 후예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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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6-07 17:57 조회21,0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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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에서 야권은 희망의 불씨를 건져 올렸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민의식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저력이 만만치 않음이 드러났다.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되살리겠다는 젊은 세대가 정치 무대에 올라선 것도 야권에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야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민주당은 서울과 경기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으며 정당득표율에서도 한나라당을 앞서지 못했다. 야권은 국가와 지역발전에 관한 의제를 주도하지도 못했다. 많은 국민들은 야권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자기성찰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고무적 승리에 도취되지 말길

노무현의 후예들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들에게 다시 정치적 기회가 주어진 것은 민주정부의 전통을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걱정이 앞선다. 자신들은 옳았으나 국민들이 오해했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노무현을 절대화하는 것은 오히려 노무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좌절은 민주개혁세력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질 뻔했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 동안 제기된 노무현정부에 대한 비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기 바란다. 핵심 권력집단의 경영능력, 국정목표와 주요 정책들간의 일관성, 관료제에 대한 적절한 지배력, 각종 이익갈등에 대한 조정력, 정책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등의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

지금 분단체제는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일부 보수세력의 과도한 '강경 북풍몰이'가 이번 선거에서 오히려 집권세력에 화를 불러왔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동아시아 질서는 더 대결적인 국면으로 들어갔다. 분단체제는 전쟁과 대결에 기생하는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그에 대항하는 민주화 연합과 협약을 매우 어렵게 한다.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힘은 민주화 체제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통해 분단체제의 기득권 세력이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규칙은 진보·보수세력의 협약에 의해 성립한다. 민주화 협약이 남북을 관통하는 자연법적 질서가 되기 위해서는 그 협약의 이행을 추진하고 단속하는 지역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노무현의 후예들이 지역을 거점으로 새 출발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는 '하방'(下放), 즉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지역에서 평화를 만드는 실험 사례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은 분단체제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처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의 선배 세대에 속하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정성헌 이사장의 경험을 참고했으면 한다. 그는 획일적인 성장모델을 추종하는 대신 지역 특색에 맞는 발전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1998년 민간인출입통제선 출입영농 타당성 조사를 의뢰 받았다. 연 8억원 정도의 농업소득이 예상됐으나, 그는 진부한 개발방식을 피하고자 했다. 오랜 고민과 협의를 거쳐 2009년 평화생명교육마을을 개장했으며, 지뢰생태공원·생명연구동산을 조성하고 있다. 자연과 생명의 복원을 통해 지역의 가치를 새롭게 하고 있다.

국민마음을 얻는 실천이 먼저

그는 운동과 사업이 지역현장에 뿌리를 내리면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설파한다. 평화생명동산은 한나라당 출신 도지사ㆍ군수와 함께 논의하면서 골격을 만들어왔다. 지역의 공무원들과도 충분히 대화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남북교류에서도 외형이나 규모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작은 실천들이 진짜 성과라고 말한다. 지역주민을 먼저 살피고 북한주민에 도움을 주면 '퍼주기' 논란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자주 쓰는 도덕경의 말씀이 있다. "사람은 땅을 닮고(人法地), 땅은 하늘을 닮고(地法天), 하늘은 도를 닮고(天法道),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닮는다(道法自然)." 새로운 지역을 형성하고 분단체제를 넘어서려는 이들과 함께 음미하고 싶은 구절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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