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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증오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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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6-28 09:02 조회20,0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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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진실 게임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참여연대의 의문 제기에 국가보안법 적용을 들먹이는가 하면, 가스통과 시너병 위협이 다시 등장했다. 이렇게 되면 경험적으로 반증 가능한 것만이 과학적 명제라는 말이 수용될 자리는 아주 작다. 도처에 '열린 사회'의 방해자들이 출몰하고 있다. 무엇이 지금 '열린 사회'로의 길을 가로 막는가.

지난해 6월 홀연히 세상을 떠난 고 서동만 교수의 저작에서 우리 사회의 비틀어진 모습의 발단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된 <북조선 연구>는 안보 비대 속의 안보 취약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불신과 증오의 뿌리는 6월의 전쟁이었다. 그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무력통일을 시도한 내전으로 개시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증오로 가득 찬 분단체제였다.

전쟁의 악몽과 분단체제

전쟁 기간 북한 지역은 거의 초토화했다. 북한 정권은 이후 전쟁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남북한의 지역적 일체성에 대한 의식도 단절되고 심리적으로 철저한 적대관계가 형성된다. 전쟁 이후 북한은 남한과의 연계문제를 유보하고 자신들만의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개조를 실시했다.

남한의 경제건설에도 북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경제개발 계획과 고도성장 노선은 북한의 선발 공업화의 영향이 컸다. 박정희 정부의 성장정책의 모델인 일본의 전후 고도성장은 이른바 '1940년 체제'이 모태이다. '1940년 체제'는 옛 소련의 1차 5개년 계획을 모델로 삼은 괴뢰국가 만주국의 계획경제 실험이다. 스탈린 모델이 만주국을 거쳐 일본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남조선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북한 정권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인민군의 괴멸, 소련의 소극적 지원, 중국의 참전과 지휘권 이관 등으로 북한 정권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파괴가 심해질수록 북한 군부와 인민들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단결했다. 전쟁을 통해 인민군 병력은 3배나 증가했고 군대 안의 당원은 그보다 더 증가했다. 이후 당과 군은 김일성의 확고한 권력 기반이 되었다.

전쟁은 체제의 복합성과 탄력성을 제거하고 법치와 인권을 말살하는 체제를 가져왔다. 선제 공격을 주도한 것은 북한의 두 지도자 김일성과 박헌영이었다. 그러나 전쟁 책임은 박헌영에게 집중되었고 이 과정에서 강력한 전체주의 체제가 성립했다.

전쟁 기간 남한 민중은 북한에 호응하지 않았으며, 북한 정권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38선에서 전선이 교착되면서 정전협정이 추진되었다. 타협을 바라는 소련과 중국에게 남한에 잔존한 유격부대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박헌영에 비하면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과 공유하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소련과 중국이 전쟁 책임을 피해가면서 남로당 출신들이 희생되었다. 박헌영이 제거되면서 김일성은 상징적 지도자의 위치를 넘어 당과 정부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했다.

전쟁은 군사적 비대화와 함께 법치주의의 결여, 사법제도의 유린, 인권의 억압을 가져왔다. 남한 역시 왜곡된 시스템 속에 있었다. 북한이 '미제의 간첩', '반혁명분자'로 반대세력을 억압했다면, 남한에서는 '빨갱이' '친북'을 증오와 저주의 사냥감으로 삼았다.

국가 근본에 대한 각성을

남한은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증오의 메커니즘과 작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증오의 뿌리가 갑자기 커져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한반도는 미국ㆍ중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고, 한국 정부의 외교ㆍ군사적 대응에는 어차피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만 말문을 막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시민단체나 군 일부를 희생양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위협은 질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억압이다. 정파를 떠나 나라의 근본에 대한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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