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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원전결사대, 그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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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4-05 19:36 조회35,8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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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 동북지역 대지진과 해일, 그리고 거기 이어진 원전사고는 단지 대규모의 재난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는 다차원적 의미라는 면에서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바로 이웃나라의 일이기 때문에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이나 작년 아이티 지진에 비해 사망자가 더 적었음에도 훨씬 더 직접적인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충격이 컸던 데에는 지진과 해일의 순간들이 시시각각 생생한 화면을 통해 전달된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집안과 사무실, 거리의 벽면과 가판대에 놓인 각종 매체들이 실제상황이라 믿기 어려운 끔찍한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제공하여, 한동안 우리가 정말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게 맞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류문명의 절멸을 각오해야 하는 원천적 위험

이 참담함의 자극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당연히 우리만이 아니었다. 가령, 3월 11일 홍콩에 머물던 한 기자의 리포트에 따르면 그의 스마트폰에는 유튜브앱을 통해 즉각 지진의 동영상이 뜨기 시작했는데, 그에 의하면 지진 하루만에 ‘지진’ ‘쓰나미’라는 단어를 포함한 1만 6천개 이상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고 그중 일부는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한다.(인터넷 동아일보 4.1) 그런 점에서 이번 일본 동북해안을 덮친 지진해일은 온 세계 사람들에게 10년전 뉴욕 쌍둥이빌딩을 강타한 테러공격에 버금가는 경악을 주었으며, 그 두 사건이 인간의 시각적 경험과 심층의식에 새겨 넣은 상처의 크기는 두고두고 비교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지진해일의 피해가 엄청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이다. 역사가 가르쳐주듯이 자연이 행사하는 생산력과 파괴력의 위대함을 배우고 거기 복종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원자력에 관계된 일련의 사고는 이와 아주 다른 것이다. 폭탄을 만들기 위해서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든 원자핵의 인위적인 분열과 융합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절멸을 각오해야 하는 원천적 위험의 하나임이 현실 속에서 입증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이번 원전사고의 대처과정에서 나타난 부수적인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듯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성물질이 유출되기 시작하면서 3월 14일 800여명 원전 직원들은 빠져나가고, 남은 50명만이 현장에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작업에 투입되었다.「인디펜던트」는 그들이 “무거운 산소통을 둘러메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서 작업했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린피스의 반핵운동가 리아너 퇼러는 그들이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15분씩 교대작업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됐을 것이며 즉각 방사선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한겨레 3.17) 다른 보도는 작업자들이 “최소한의 수면과 음식조차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 있으며, 오염된 바닥에서 온전한 보호장비도 없이 잠을 자는 수가 있었다고 전한다.(인터넷 동아일보 4.1)

이후 후쿠시마 원전에는 작업인원이 초기의 ‘결사대 50인’으로부터 180명, 58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들은 10분만 일하면 구토와 탈진증세를 보일 정도의 강한 방사능과 사투를 벌여야 했으며, 이마저도 방사능 누적치가 한계에 달해 있다고 한다.(프레시안 3.19)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작업을 계속하는 셈인데, 그렇기 때문에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원전결사대’ ‘얼굴 없는 영웅’ ‘현대판 사무라이’라는 찬사를 바치는지 모른다.

경북 울진의 할머니도 ‘원전결사대’

그러나 그 영웅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불편한 진실의 일부가 밝혀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사고현장에 투입된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처자식 없는 계약직 직원들로서 불과 1만엔의 일당을 받아온 사람들이라 한다.(프레시안 3.19) 「가디언」에 의하면 현장작업에 참가하고 있는 간노 신고씨는 본래 원전 주변에서 담배농사를 하던 농부로서 원자로 건설 당시 잡역부로 일했던 인연으로 수습작업에 나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프레시안 3.23) 「한겨레」신기섭 논설위원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1960년대 일본에 처음 원전이 등장한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위험한 업무를 주로 도맡아온 것은 ‘원전 집시’라 불리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며, 원전을 일본에 수출한 미국 기업체의 파견근로자도 상당수가 흑인 하청노동자였다고 한다.(한겨레 3.24)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유지에 관련된 이 가혹한 현실은 그러나 남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20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앞으로 2024년까지 14기를 더 건설할 예정이라 하는데, 지금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영덕은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원자력유치협의회’ 같은 기구가 만들어져 서로 자기네 고장으로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지 취재에 나갔던 기자는 어느 할머니의 이런 말을 전한다: “보상받은 돈으로 편히 살다가 자식들한테 좀 물려주면 얼마나 좋으냐.”(한겨레 3.24)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평범한 담배농부가 어느날 원전결사대의 일원으로 변신했듯이, 경북 울진의 한 가난한 할머니는 평생 꿈꾸지 못했던 돈을 만질 기회를 잡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담보로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할머니도 ‘원전결사대’가 아니고 무엇인가! 진정 무서운 것은 지진해일에 의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자본주의 침탈구조에 의한 인간성 파괴임이 분명하다.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

(다산포럼. 201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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