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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신데렐라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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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2-08 12:50 조회23,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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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열풍이 뜨겁다. 얼마 전 구입한 휴대폰이 갑자기 고물이 된 것 같다. 이어서 아이패드가 발표되는 것을 보니 제2의 구텐베르크 혁명이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이런 열광의 중심에 스티브 잡스가 서 있다. 그는 누구일까? 엔지니어이자 인문주의자라는 근사한 칭호도 있다. 나는 그로부터 기업의 본질과 기업가의 역할을 되새겨 본다.

 

미국의 힘 보여준 산업혁명가

신고전파 경제학에 의하면 기업은 생산함수이다. 생산요소를 투입하고 이를 가공하여 생산물과 서비스로 전환하며 시장에서 그 생산물과 서비스를 판매하여 이익을 얻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업을 투입물을 산출물로 변화시키는 일종의 기계장치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기계장치는 내용물이 불분명한 블랙박스처럼 보인다.

기업은 기업가를 빼고서는 논할 수 없다. 기업가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로널드 코즈는 기업가의 역할, 즉 기업의 본질을 경제시스템 안에서 수행하는 계획기능으로 보았다. 그것은 조직, 경영, 조정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생산요소의 일종인데, 이러한 기업가의 활동에 의해 기업은 '의식적 힘의 섬'(islands of conscious power)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슘페터는 변화 내지 혁신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원동력을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에서 찾았는데, 이는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위험을 무릅쓰는 것, 역경을 뚫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기업의 본질로 생각한 것이다.

익숙한 옛 이야기에 비추어 본다면, 기업가는 신데렐라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폭넓게 전승되어온 이야기다. 단순하고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업가의 전형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판본은 여러 가지다. 샤를 뻬로나 월트 디즈니의 각색에 의하면, 신데렐라의 성공에는 타인의 도움과 행운이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구전설화에 보다 충실하다고 평가 받는 그림형제의 판본에서는 본인과 여타 요소와의 관계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죽은 친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나뭇가지를 심고 눈물로 나무를 키우면서 소망을 기도한다. 그 나무에서 사는 하얀 비둘기는 역경에 처한 신데렐라를 돕는다. 죽은 어머니, 나무, 하얀 비둘기는 신데렐라와 신뢰와 소망을 공유하는 동지적 관계에 있다.

가부장제 가치관이 뚜렷한 샤를 뻬로나 월트 디즈니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라면 주인공은 차라리 대모 요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모 요정은 신데렐라를 도와 마술봉을 휘두르는데, 이는 기획자이자 혁신가의 모습이다. 그는 누더기, 호박, 쥐, 도마뱀 등의 물적 요소에 마술봉이라는 기술ㆍ지식 요소를 결합하여 드레스, 마차, 말, 말구종 등을 만들어낸다. 신데렐라와 왕자를 만나게 하는 것도 대모 요정이 기획한 혁신적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로 각색된 이야기들 중에서 보편적인 요소는 신분 또는 계층 상승에 관한 것이다. 계모 밑에서 재투성이 하녀의 처지이던 신데렐라가 주변의 새로운 요소들을 재조직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혁신적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 결과 신데렐라는 '백마 탄 왕자'와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한국엔 '계모의 딸'만 있는 건가

스티브 잡스는 우리 일상생활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기업가다. 그는 최초로 퍼스널컴퓨터를 개발했으며 정보ㆍ지식의 생산ㆍ유통관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산업혁명가이자 문화혁명가다. 또 중요한 것은 그가 재투성이 비슷한 처지에서 솟아올랐다는 점이다.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친부모를 떠나 입양되었으며, 대학은 학비 부담 때문에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스티브 잡스는 미국 자본주의의 저력을 보여 주는 존재다. 변화와 혁신, 주변부의 성장에 의한 주류의 교체는 미국의 생명력이 꺼지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한국 사회와 기업은 어떤가? 혹시 신데렐라는 보이지 않고 계모의 친딸 같은 상속자들만 군림하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노쇠한 봉건적 위계제의 세계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10.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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