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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료마의 매력, 일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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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3-12 09:24 조회21,5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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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방학을 일본의 남단 큐슈의 후꾸오까에서 지냈다. 그때 일본의 오늘을 들여다 보는 창으로 주목한 것이 사까모또 료마(坂本龍馬) 열풍이다. 후꾸오까의 서점 어느 곳을 가든 료마 관련 책을 한군데 모아놓은 코너가 있었다. 듣기로는 일본 전역의 대형서점 어디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에 관한 책이 100종을 넘었을 뿐만이 아니다.  그가 거쳐간 유적지를 답사하는 여행상품이 텔레비전에서도 광고되고, 그가 즐겨먹었다는 음식 등 각종 상품이 출시되었을 정도이니, '료마 비즈니스'란 말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 언론에서도 이미 보도되었듯이, 이런 붐을 이끈 일차적 원인은 올 1월부터 방영된 NHK 일요 드라마 「료마전(龍馬伝)」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료마 역을 맡은 주인공 후꾸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의 매력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나가사끼 출신으로 현재 41세인 그는 원래 가수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해 드라마와 영화에도 나오고 사진작가, 라디오 진행자 등 여러 영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미남인 그는 여성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조사하면 줄곧 상위로 뽑힐 정도로 여성 팬이 많다.

 

 료마 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민작가로 불리는 시바 료따로(司馬遼太郞)의 장편소설 『료마가 간다』(문고판 전8권)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60년대 베스트 쎌러가 되면서 그는 일본에서 '성장'과 '꿈'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잡았다. 이런 료마가 버블경제 이후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일본에서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도대체 일본인들은 지금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토꾸가와(德川) 막부(幕府) 말기인 1835년 토사(土佐, 현 高知縣)에서 차별받는 하급 사무라이(鄕士)로 태어났으나, 자신의 지역적 한계에 갇히지 않고 전국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사쯔마(薩摩)와 쵸슈(長州) 번을 동맹하도록 만들고, 3백년 간 지속되어온 막부를 붕괴시키고 왕정복고(大政奉還)를 이끈 무혈혁명을 연출한 것이 그의 핵심 공적으로 얘기된다. 그런데도 그는 정치 참여를 사양하고 대신 부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해운회사와 무역회사를 경영하겠다는 생각으로 서양문명 수용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1867년 32세의 나이로 막부측의 자객에 의해 암살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교육학자로서 대중적 인문서를 여럿 간행한 사이또 타까시(齋藤孝) 토꾜대 교수는 『처음 만나는 사까모또 료마』(2009)란 신간에서 료마를 “일본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일본을 근대국가로 바꾼 대단한 인물”로 평가하면서 그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한 구상력이다. 둘째, 아무런 지위 없이도 남을 매혹시키는 인간적 매력이다. 셋째, 현대사회에도 통하는 정치력, 즉 사심을 버리고 국가 전체의 이익을 앞세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정치가로서의 자질이다. 넷째, 비지니스맨으로서의 유연함 즉 체면보다도 실익을 취하는 상인적 자질이다.

 

 이런 자질을 오늘날 일본인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 사이또 교수가 전하려는 메시지이다.

 

 그런데 주간지 『킨요비(金曜日)』는 2월 12일자에 이런 매력이랄까 이미지에 이의를 제기하고 영웅사관의 유행을 비판하는 글 세편을 실어 눈길을 끈다. 이에 따르면, 료마는 기회를 잡아채는 상인으로서의 민첩함은 있을지 모르나, 결코 영웅도 위인도 아니다. 사쯔마와 쵸슈를 동맹시킨 것도 ‘샤리’(射利) 즉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올리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나가사끼에선 스코틀랜드인 글로버(T. Glover)---그의 저택 글로버 가든은 지금 유명한 관광지이다---가 설립한 무역회사의 대리인으로 일하면서 무기매매로 이익을 올렸다. 그리고 무기거래에서 얻은 재물로 나가사끼의 유곽에서 즐기다 매독에 걸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무기상인’으로서의 부정적 이미지와 ‘국민적 영웅’의 이미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실제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능력이 내겐 없다. 사실 나로서는 그보다 왜 지금 일본사회가 료마에 매료되고 있는가 하는 사회적 맥락에 더 관심이 간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을 건강하게 하자’라든가, ‘일본은 힘이 있다’라는 담론이 매스컴에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메이지 시기의 활력을 그리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NHK가 ‘료마전’에 앞서 시바 료따로의 러일전쟁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을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한 것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

 

 이런 담론은 일본 우익의 핵심 주장과 통하는 면이 있다. 조선통치나 중국침략이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 자위를 위한 ‘합법적 행동’이었다고 보는 우익의 대표적 논객 와따나베 토시오(渡邊利夫)의 견해를 보자. 그는 메이지 시기 일본의 합리적 정신---시바 료따로가 말한 무사의 혼, 군사력에 대한 절대적 신뢰, 실력자에 의한 인재등용의 유연성 등---이 쇼와(昭和) 시기에 사라지면서 퇴영과 타락으로 빠져들어 망국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한다.(『新脫亞論』, 2008)

 

 ‘건강’과 ‘힘’을 누리고 싶다는 일본의 분위기에는 그렇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이 건강해져 활력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지난 세기에 추구했던 그대로의 건강과 힘이라면 곤란하다는 얘기이다.

 

 한 일본 지식인이 시바 료따로의 소설 제목에 빗대어 지적했듯이, 언덕 위의 흰 구름을 바라보며 그곳까지 오르려는 것이 개발도상국이라면 일본과 같은 선진국은 이미 그 언덕에 올라 흰 구름 속에 들어간 형국인데 문제는 그곳이 안개 투성이란 것이다. 일본은 그 안개 속에서 이제 자신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요미우리신문』, 2월 10일자 사설)

 

여기서 ‘새로운 길’이 신국가발전전략을 의미할 터인데 그것이 20세기에 일본이 걸어온 국익 신장의 길이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국익이라 하더라도 ‘21세기형 국익’이 아니면 안될 때이다. 그것은 국가의 구성원 일부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이고, 일시적인 이익이 아닌 지속적인 이익이며, 국제사회의 이익과 양립할 수 있는 이익이어야 한다.

 

 이런 발상에서 새로운 길을 헤쳐나가는 것이 지금 일본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고, 우리도 일본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지난 세기 동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겪은 ‘시간과의 경쟁’의 역사를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깨워주는 역사의 지침은 너무나도 명확하지 않은가.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서남통신. 201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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