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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캘리포니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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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1-08 09:32 조회22,7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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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지만 이곳 남부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청명하기만 하다. 한낮 기온은 섭씨 20도를 육박한다. ‘캘리포니아를 꿈꾸며’라는 노래처럼 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날씨다. 하지만 이곳의 경제기상도는 다르다. 엄동설한이다.

연구 차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을 방문한 필자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았다. 도착 후 1주일간 여러 가지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는데 대학이 문을 닫은 것이다. 도서관을 포함해서 학교의 모든 시설이 폐쇄되고, 교직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주정부 예산 감축의 결과다. 모든 주립대학이 연말에 보름 넘게 문을 닫았다. 각급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가 늘어나고, 등록금이 올랐다.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구멍 나고 금이 간 도로가 방치되어 있는 것도 눈에 많이 띈다. 영화배우로 인기를 누렸던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인기는 요즘 형편없다.

부자감세 시장만능주의 발상지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이고, 미래를 앞서서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기회도 미래도 별로 잘 안 보인다. 주택버블이 어디보다 심했던 만큼 버블 붕괴의 여파도 크다. 실업률이 무려 12.7%에 이르렀고, 전망도 좋지 않다. 주정부 세수가 급감하면서, 지출을 줄이고 줄여도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제위기 한가운데서 주정부 지출을 감축하니 경제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정파탄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당파의 이익만 고집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도 문제다. 특히 소수파로 전락하면서 더욱 극단화한 공화당의 지독한 세금 반대론은 캘리포니아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 캘리포니아가 겪고 있는 재정위기는 자승자박의 결과다.

캘리포니아는 부자를 위한 감세와 시장만능주의를 내세운 레이건 혁명의 발상지다. 레이건이 복지정책을 공격하면서 1966년 주지사가 된 곳이고, 또 78년의 ‘주민발의 13호’를 통해 세금반란을 확산시킴으로써 80년 레이건의 대선승리에 크게 기여한 곳이다. ‘주민발의 13호’란 재산세를 부동산 가격의 1% 이내로 제한하자는 것으로, 노인들이 재산세 때문에 집을 내놓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우리나라에서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며 반대하던 논리와 유사하다. 이후 캘리포니아의 재산세 수입은 급락했고, 지금 캘리포니아는 전국에서 소비세가 가장 높은 곳이 되었다. 재산 많은 사람이 내는 세금은 줄고, 저소득층이 부담하는 세금은 늘어난 것이다.

‘주민발의 13호’에는 또한 세금인상을 위해서는 주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다수파여도, 재정파탄이 눈앞에 닥쳐도, 세금 인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캘리포니아의 현실이다.

양극화 등 모방 우리 미래 걱정

캘리포니아의 일이 마냥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캘리포니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우리나라도 열심히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상징하는 부와 히스패닉 이민자를 위시한 저소득층 간의 양극화를 지금 우리는 재벌경제와 서민경제 사이의 양극화로 모방하고 있다. 둘째, 지금은 꺼져버렸지만 한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캘리포니아의 부동산버블을 우리는 아직도 키워나가고 있다. 셋째, 대중을 호도하여 부자감세를 실시하고 결국에는 서민부담을 가중시키는 레이건식 세금정책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경제사를 돌이켜보면 한때 잘 나간 나라는 많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고,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할 역량이다. 레이건 혁명의 발상지 캘리포니아의 하늘 아래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한다.


 

유종일|KD 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2010.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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