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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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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2-24 08:13 조회22,1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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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경향신문과 전화통화를 하며 “불법시위를 하거나 반정부적인 행위를 할 경우 예산을 줄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은 맞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나에게 하라고 해도 신경질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장관의 대답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작가들이 느끼는 굴욕감과 분노가 신경질 부리는 것으로 보이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법시위를 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공적인 손해를 끼친 사람이 있으면 그를 법대로 처벌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작가회의가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형사고발을 하면 됩니다.

집회불참확인서, 작가들에 굴욕감

단순히 촛불집회에 참여한 1800여개 단체 가운데 하나라는 이유만으로 각서나 다름없는 집회불참 확인서를 요구하고, 향후 이런 사실이 발견되면 지급한 보조금을 반납하겠다는 확인서를 쓰라고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에 대한 기본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입니다.

‘반정부적인 행위를 할 경우에도 예산을 줄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은 맞지만’이라는 말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정부에서 하는 모든 일은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정의롭고 선하고 옳은 것만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찬성이 있고, 반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반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서야 어떻게 책임지고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습니까? 더구나 작가들의 DNA 속에는 옳지 않은 일은 비판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옆에 도끼를 놓고 상소하는 올곧은 정신의 전통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대과에 합격하고 임금 앞에서 나라 경륜의 방책에 대해 대답하는 최종 시험 단계인 ‘책문’에서도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하고 직언하는 광해군 때 임숙영 같은 사람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작가들의 비판정신에 재갈을 물리고 돈으로 길들이려고 하는 발상 자체부터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장관의 이런 인식과 발언들이 작가들로 하여금 현 정부의 문화 및 제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질책하는 저항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불씨가 되고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단체에는 400억원을 지원하여 지상 20층, 지하 5층짜리 건물을 지어 사무실로 쓰게 해주고, 어떤 뮤지컬에는 공모 절차도 없이 10억원을 지원하면서, 공모에 응하고 심사를 거쳐 지원이 결정된 사업비 보조금 몇천만원도 각서나 다름없는 확인서를 쓰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고 하는 비민주적이고 반문화적인 행정에 분노한 작가들의 저항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없습니다.

“권력의 횡포에 무릎 꿇지 않을 것”

총회에 모인 회원들에게 이번 예술위 사태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집회불참확인서 용지를 복사해 나누어 주었더니 한 여성 시인은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걸 보았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작가들이 느낀 치욕스러움은 지워지지 않고 오래 갈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작가회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고, 책을 내지 못하거나, 사업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돈과 권력의 횡포에 무릎 꿇지 말자는 것이 작가들의 결의입니다.

“예술로 아름다운 세상,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 지난달까지도 우리는 이 말을 믿고 예술위와 함께 일해 왔습니다. 예술위가 표방하는 이 문화적 가치를 우리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문화부와 예술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자 하는 일인지 우리 모두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지 아닌지 대답해야 합니다.

도종환 | 시인·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경향신문. 2010.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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