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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자율형 사립고의 정치경제적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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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7-22 15:00 조회29,5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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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자율형 사립고가 서울에 13개 허가되어 올해부터 4000명 이상의 학생이 자율형 사립고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법원에서도 선거법 유죄판결을 받은 공정택 교육감이 이런 결정을 할 자격이 있나 싶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공 교육감이 아니라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내건 이명박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율형 사립고가 서울에 이어 지방 곳곳에 생겨나면 기존의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만으로도 이미 반송장이나 다름없던 고교 평준화는 사망진단서를 발부받게 될 것이고 더불어 고교 입시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는 아마 일정 수준 이상의 내신성적자 가운데서 추첨으로 선발하니 고교 입시 경쟁 같은 건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자율형 사립고가 입시에서 높은 성취를 보일 가능성은 크다. 실제로 국민공통 교육과정의 교과 이수단위의 50%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제4조는 자율형 사립고가 입시 명문으로 성장할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국민공통 교육과정은 고1까지만이고 2∼3학년은 심화선택 과정으로 이미 교장의 재량이 상당한데, 공통 교육과정마저 51%만 운영하면 되니 이쯤 되면 입시교육에 전념할 것을 ‘권고하는’ 셈이다. 아마도 외고들마저 각종 교과과정상의 제한을 피하려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며, 그렇게 될 때 추첨제 같은 것이 존속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결국 긴 우회로를 거쳐 과거 명문고 체제로 복귀하게 되는 셈인데, 그것이 단순한 복귀는 아니다. 명백히 더 나빠진 복귀이다. 과거의 명문고 체제도 과도한 입시교육과 사교육으로 평준화 체제를 불러들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는 대학 진학률이 많이 낮았고 사교육도 강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집 자녀가 서울대도 가고 서울대 총장도 될 길이 제법 열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계층화는 심화되었고, 입시경쟁은 격화되었고, 사교육은 강력해졌다.

 

또한 과거의 명문고는 공립학교 중심이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시절에 사립학교라고 해서 평준화제도 도입에 저항할 수 있었겠는가마는 그래도 명문고들이 공립이었던 것이 평준화 도입의 어려움을 많이 줄여준 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 특목고를 제외하면 명문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사립학교들이다. 고교 교육체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해도, 예컨대 평준화를 다시 지향한다고 해도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명문 사립고를 무슨 수로 건드리겠는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5년 이내로 지정·운영하되, 시·도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5년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05조의 3의 ⑤가 지정 취소의 근거 조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것과 연동되어 자율형 사립고는 과거의 명문고와 달리 다른 학교보다 더 비싼 등록금을 받게 된다. 아마도 일반 고등학교의 3배쯤 될 것이다. 입시교육이라는 면에서 그렇겠지만 아무튼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싶으면 돈을 더 내라는 것인데, 학부모의 부담도 일단 공식 학교로 들어오면 공교육 재정에 포함된다. 결국 전체 교육재정 가운데 정부 부담은 늘리지 않고 학부모의 부담을 늘리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래도 자녀를 일단 자율형 사립고에 보낸 부모들의 경우 등록금은 늘망정 사교육비는 줄어들 것이다. 그런 조삼모사를 두고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 절반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우길는지 모르겠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09.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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