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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미디어법의 전국(戰國)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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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7-29 08:28 조회31,5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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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전투가 일단락됐다.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단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소유 길이 열렸다. 지상파에는 당장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고, 종합편성채널에 관심이 모아지는 모양이다. 셈법에 밝은 기업들은 당분간 신중할 것이라고 한다. 산업문제가 아닌, 심각한 정치문제가 됐기 때문에 고비마다 또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보면 이미 내전상태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국민'이라고 부르기 어려우니 전국(戰國)시대라고 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상황을 개탄하고 정치권을 비난한다고 해서 해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론만 횡행하는 작금의 상황

서구 근대국가의 탄생도 여러 그룹의 갈등과 협약의 결과이다. 오히려 '하나의 공동체'라는 전제를 버리고 생각해보자. 게임이론은 냉정한 시각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게임이론은 의사결정자들이 항상 전략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본다.

먼저 미디어법 게임의 주체, 즉 의사결정자는 누구인가? 전국시대의 게임 당사자는 유력한 강자들이었다. 이전 춘추시대와 달라진 것은 주(周)나라 종실이 의사결정 구도에서 배제됐다는 점이다. 전국시대는 조(趙), 한(韓), 위(魏), 지백(知伯) 등 권신들이 각축하는 과정에서 진(晋)나라를 분할하면서 시작되었다. 미디어법과 관련한 게임의 주체는 여당과 야당, 몇 개 언론사들이다. 대기업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 같고, 여당 내 야당은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게임의 목표는? 세력 확장이다. 게임에서는 어떤 수단이 선택되는가? 대립과 공격이다. 지백은 조ㆍ한ㆍ위와 함께 범(范)과 중행(中行)의 영토를 나누어 자신의 영지로 삼았다. 분노한 진나라 출공(出公)이 토벌하려 했으나 이들은 오히려 연합해 군주를 축출했다. 주나라 때 형성된 종법질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하극상을 감행한 것이다.

미디어법의 목표는 미디어산업에 새로운 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세력 확장, 또는 재편 흐름과 맞물리고 말았다. 각 진영에서 강경파와 공격수가 득세하고 있다. 1987년 헌법체제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가능케 한 정치세력간 타협의 결과이다. 그런데 다수결을 앞세운 지배의 논리와 합의를 주장하는 저항의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 대립이 심해지고 이에 맞물려 개헌 논의가 진행되면 87년 헌법정신은 부정되고 대혼란을 맞을지도 모른다.

게임의 수단과 결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대립과 공격은 공존과 타협의 여지를 배제한다. 최종결과는 상대방의 멸망ㆍ흡수ㆍ합병이다. 지백은 진나라의 국권을 장악한 후 다시 영토를 넓히려고 했다. 위씨와 한씨는 한발 물러서 땅을 바쳤으나 조씨는 압박을 거부했다. 지백이 조씨를 공격했으나, 조ㆍ한ㆍ위는 다시 공모하여 지백을 멸망시켰다.

진(晋)나라가 갈라진 이야기는 세력다툼의 전형적 패턴을 보여준다. 전국시대는 피비린내 나는 극한 대립을 거치면서 숱한 배반과 복수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분열은 결국 진시황이나 한고조에 의해 결말을 맞지만 정치적 통일로 천하를 안정시킬 수는 없었다. 대립ㆍ적대ㆍ지배의 원리를 종식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은 공자학파의 사상이었다.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관용ㆍ공존ㆍ평화의 원리가 사회의 질적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대립 적대를 관용과 공존의 틀로

적대적 게임을 협동적 게임으로 전환시키려면, 지배ㆍ피지배의 이항대립 구도를 중간그룹이 개입하는 삼자구도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중도를 걸어야 할 이들이 오히려 적대적 게임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 너무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맹자가 양혜왕에게 한 말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왕께서는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9.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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