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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정당의 구조화와 선거제도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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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03 17:34 조회34,8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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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보았듯이 한국형 다수제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정당정치의 후진성이다. 정치 선진국들에서처럼 이념이나 정책 중심 정당들이 포진되어 있고, 이들 정당들이 상당한 정체성과 영속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 나라의 정당구도는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구도는 그렇지 못하다. 위임대통령제가 지속되는 것도,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의 선호와 이익이 정치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도, 실질적 민주주의가 진전이 안 되는 것도, 그리고 신자유주의화가 심화일로에 있는 것도 모두가 상당 부분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의 구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대부분의 정당정치인들이 아직도 인물과 지역을 자신들의 구심점으로 삼아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니 거기서 (요즘 유행하는 용어를 쓰자면) 소위 정당정치의 '선진화'를 기대하기란 무리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정당의 구조화를 촉진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역할거주의라는 한국정치의 고질병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이념이나 정책 정당들의 부상을 막는 일종의 진입장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과적 처방에 우선순위를 두어 제도적 원인에 눈을 돌린다면 한국의 현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위임대통령제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사실상 그 두 제도들이 지역주의라는 고질병을 심화 혹은 고착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선거제도와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고,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4>편에서 논의하기로 한다.

1.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와 지역주의

지역할거주의와 그에 기초한 정당보스주의 그리고 고비용 정치구조가 한국정치의 중요한 특색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의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들이라 할 수 있다. 지역주의가 팽배한 정치사회 구조 하에서는 이념이나 정책에 기반을 둔 신생 개혁정당 등이 부상하기가 어렵다.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선호 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선호에 의해 선거의 결과가 결정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역 명망가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 정당들에 의해 정치가 분할 지배될 것이고, 거기에서 친(親)노동 정당과 같은 이념 혹은 정책 중심의 유력 '전국 정당'이 들어설 여지는 매우 적다. 결국 이러한 고질적 장애로 인해 한국의 정치에서는 지역과 인물 중심의 '비구조화된' 정당체계가 유지돼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지역할거주의를 청산하고 정당의 구조화를 이루기위한 정치제도적 처방은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 그것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이라 하겠다. 선거제도가 정당구도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뒤베르제(Maurice Duverger)와 사르토리(Giovanni Sartori) 이래 수많은 비교정치학자들이 밝혀온 바 그대로이다. 정당구도의 변화를 원한다면 선거제도의 개혁을 도모해야 함이 마땅하다.

소수의 비례대표의원을 제외한 한국 국회의원의 대다수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 의해 선출된 지역구의원들이다. 그런데 이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한국의 독특한 지역주의와 조우하여 지역에 기반한 거대 정당들에게 지나치리만큼 유리하게 운영되고, 따라서 지금과 같은 지역정당구도의 유지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 선거제도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지역기반이 취약한 이념 및 정책 정당들에게는 그만큼 불리한 선거제도라는 것이다.

1996년의 제15대 총선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선거는 영남 기반의 신한국당, 호남의 국민회의, 그리고 충청권의 자민련이 벌이는 3파전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불과 4개월 여 남긴 시점인 1995년 12월 지역주의와 금권-부패 정치, 그리고 붕당-맹주정치를 타파하고 정책 중심의 개혁적 전국정당으로 발전해갈 것을 선언하며 통합민주당이 창당되었다. 통합민주당은 참신한 개혁정당의 등장을 바라던 상당수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급조된 신생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후술하는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변수를 고려한 '전략적 투표' 경향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무려 11.2%의 득표율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득표율은 고작 3.6%(9석)의 지역구 의석점유율로 전환될 뿐이었다. 전국의 각 지역구에서 해당 지역에 뿌리내린 기존의 지역정당 후보들을 제치고 1위에 당선될 수 있었던 신생 통합민주당 후보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1위가 아닌 한 2위 이하의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획득한 표는 모두 사표로 처리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처럼 나타난 개혁정당은 군소정당으로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만다.

반면, 당시 지역정당들이 누린 제도 혜택은 지나칠 정도로 컸다. 예컨대 신한국당은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각각 55.8%와 46.5%의 득표율로 해당 지역 의석의 100%와 73%를 가져갔다. 국민회의는 광주와 전남에서 각각 86.2%와 70.9%의 득표율로 양 지역의 의석 모두를 독식했다. 그리고 자민련은 대전과 충남에서 고작 49.7%와 51%의 득표로 양 쪽 모두에서 역시 100%의 의석을 차지했다. 참고로,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통합민주당은 각각 18.8%와 14.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신한국당에 이어 양 지역 모두에서 선호 2위 정당에 올랐지만 부산에선 0석 그리고 경남에선 고작 2석(의석점유율 8.6%)을 확보했을 뿐이었다.

이 사례는 지역할거주의가 풍미하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이념이나 정책 중심의 신생 정당 출신들이 지역적 지지기반이 확고한 기존의 지역정당 후보들을 제치고 일등이 되어 국회로 진출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며, 따라서 현 선거제도 하에서는 정책 및 이념정당들이 의미 있는 개혁세력으로서 부상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하에서는 오직 1위에 던져진 표만이 의미가 있고 나머지 표는 모두 사표가 되므로 자신들의 표가 그렇게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당선 가능성이 적은 후보에게는 아예 표를 던지지 않는 소위 '전략적 투표'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지역 변수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는 한국의 '전략적'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지역이 아닌 타 지역 정당 혹은 전국정당 후보에게 (설령 그 후보 개인을 선호한다 할지라도) 표를 던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주의와 결합된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지역 내 지명도가 높은 후보자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지역의 거대정당은 매우 유리하게 되는 반면 지역 기반이 취약하기 마련인 신생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심지어 울산북구와 같은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조차 노동자 후보보다는 지역당 후보에게 더 많은 표가 몰리곤 하는 현상이 한국정치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이 선거구에서는 17대를 제외하고 16대와 18대 총선 모두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지역구 대표로 뽑혔다.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계급의식이나 당파성에 기초한 진실 투표보다는 지역주의의의 영향 아래 놓인 전략적 투표 행태를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이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지역할거주의라는 정치시장의 진입장벽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효과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선거제도가 계속되는 한 지역주의의 선거결정력은 불변할 것이고, 따라서 한국의 정당정치는 (설령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정책 및 이념 정당들의 부상을 원한다할지라도) 앞으로도 여전히 기존의 지역이나 인물 중심의 전근대적 정당들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생 개혁 정당들이 부상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기존 유력 정당들이 자신들 고유의 이념이나 정책기조를 확립하고 그것을 앞세워 선거정치에 임할 인센티브를 갖게 될 까닭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2.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와 지역/인물 정당체계

<1>편에서 설명한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의 구조적 문제인 소수대표의 문제와 비비례성의 문제를 상기한다면 지역주의와 결합된 한국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가 한국 정당정치의 전근대성, 즉 인물이나 지역 중심 정당들의 지배적 위치를 앞으로도 얼마나 견고하게 유지시켜갈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간략히 하나씩 살펴보자.

<표 1>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선거구의 15대 총선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지역구 차원에서의 소수대표 문제를 잘 보여준다. 당시 이 선거구에서 1, 2, 3위는 모두 28%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들 간의 표 차이는 매우 근소했다. 1위와 2위는 350 표, 1위와 3위는 599표 차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직 1위만이 28.5%의 소수대표로서 이 지역을 대표할 뿐이었다. 이러한 소수대표의 문제는 매 총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의 두 총선에서 그러한 예를 찾아보자면, 1위와 2위 간의 득표율이 각각 37.28%와 37.26%로 그 차이는 9표에 불과했던 17대 총선의 충남 당진군 선거구, 그리고 1위와 2위의 득표율이 각각 38.7%와 38.5%로 그 차이가 겨우 129표였던 18대 총선의 성남시 수정구 선거구 등 무수히 많다.

<표 1> 소수대표의 문제 예: 15대 총선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선거구


*출처: 안순철 『선거체제비교: 제도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법문사, 2000) p.94

지역구 차원에서의 소수대표 문제는 당연히 국회 전체 차원의 소수대표 문제가 될 수 있다. 전국의 각 지역구에서 소수대표를 양산할 경우이다. 그 경우 국회는 결국 상당 규모의 소수대표들로 구성된 기관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표 2>가 요약해준다. 13대 총선에서 50% 미만의 득표로 당선된 즉 소수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의원 수는 무려 전체의 57.6%에 달했다. 14대 때에는 그보다 더한 59.5%였으며, 15대에서는 자그마치 68.8%였다. 소수대표의 비중이 전체의 70%에 육박할 정도라면 이러한 국회가 과연 다수의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역 정당들에게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서 발생하는 이 소수대표의 문제는 많은 경우 오히려 고마운 것이기도 하다. 지역 정당 출신 후보는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질지라도 (아니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다른 변수가 일정하다면 소위 지역프리미엄이 있으므로 '외지' 정당이나 전국 정당 출신의 막강한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 유리한 입지에 있다. 필요하다면 지역감정에 호소하여 지역표의 동원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반드시 50%가 넘는 득표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자들에 비해 단 1표라도 상대적으로 많은 표만 얻으면 될 뿐인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당연히 지역정당의 후보들에게 매우 유리한 것이다. 지역 정당들이 소수대표를 국회에 많이 보낼 수 있는 이유이다.

<표 2> 50% 미만의 득표로 당선된 국회의원 현황


*출처: 안순철(2000, 96)

<표 3> 15대 총선, 영남과 충청 지역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 영남지역: 경상남도, 경상북도, 부산, 대구의 모든 소선거구
* 충청지역: 충청남도, 충청북도, 대전의 모든 소선거구

<표 3>은 15대 총선 당시 각 선거구에서의 경쟁이 (호남지역에 비해) 비교적 치열했던 영남과 충청지역의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정리한 것이다. 충청 지역에서 자민련은 47%의 득표로 85.7%의 의석을 차지했다. 소수대표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 다수당이 된 것이다. 반면 신한국당은 27.8%의 득표율을 보이며 선전했으나 의석 점유율은 10.7%에 머물렀으며, 국민회의는 8.3%를 득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자민련이 득표율 47%로 전체 지역 의석의 85.7%를 차지했음은 지역정당인 자민련이 자기 지역의 각 선거구에서 소수대표를 양산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남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한국당의 득표율은 42.3%에 불과했으나 의석점유율은 무려 67.1%에 달했다. 역시 소수대표 정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된 것이었다. 15대 총선의 이 사례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의 소수대표 문제가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지역 기반 정당들에게 얼마나 유리한 선거 정치 환경을 제공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의 비비례성 문제 역시 심각하다. <표 4>는 17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이다. 우선 마지막 칸의 지역구 1석당 투표수를 보자. 당시 단독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의 경우 69,439표로 지역구 1석을 얻어낼 수 있었으나 민주노동당은 그 7배에 가까운 무려 460,114표를 필요로 했다. 그것은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에 비해서도 현저히 많은 의석당 투표수였다. 이는 지역구에서 2위 이하를 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유난히 많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간 표는 모두 사표로 처리됐기에 전체 득표수에 비해 국회 의석수가 그토록 적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의 심각한 비비례성이다.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의석 점유율인 0.8%는 자신의 득표율인 4.3%의 1/5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42%의 지역구 득표율로 53.1%의 지역구 의석을 차지하였다. 열린우리당이 상당한 수의 소수대표의원을 배출한 덕이었다. 결국 17대 총선은 위에서 통합민주당을 중심으로 살펴 본 15대 총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역 거대 정당들에게 유리한 비비례성 효과로 인해) 지역기반이 취약한 정책이나 이념 정당이 지역구에서 1위를 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선거였다.

<표 4> 17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이 같은 현상은 물론 18대 총선에서도 되풀이됐다. <표 5>가 그것을 보여준다. 민주노동당에게 필요한 지역구 1석당 투표수는 291,832표로 한나라당의 57,089표 보다 5배가 많은 것이었다. 그것은 7만 표 정도인 민주당이나 자유선진당의 것보다도 역시 훨씬 큰 표수였다. 18대에서도 이념 정당인 민주노동당의 후보들이 지역구 일위를 차지하기는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사표가 양산됐고 당연히 비비례성도 심각했다. 한나라당은 43.5%의 득표로 지역구 총 의석의 53.4%를 가져갔지만 민주노동당은 3.4%의 득표로 0.8%의 지역구 의석을 얻었을 뿐이었다.

이념 및 정책 정당의 과소대표와 지역 정당의 과도대표 현상은 이렇게 굳어지고 있다. 지역주의를 활용하여 소수대표로 선출된 상당수의 지역 정당 후보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역시 소수대표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다수당 혹은 거대 정당으로 만들고 있는 이 현상, 즉 앞서 본 '다수당의 제조'가 총선 때마다 되풀이 되고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념이나 정책 중심의 전국 정당들이 설 자리는 협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법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 정치 사회에서도 꾸준히 중대선거구제, 전면 비례대표제, 혼합형 선거제도의 도입 등이 논의되어 왔다. 어떠한 선거제도 개혁이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5>편에서 상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표 5> 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프레시안. 2009.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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