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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G20 유치와 국가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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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9-30 13:49 조회31,1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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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국 피츠버그에서 막을 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2011년부터 회의를 연례화하기로 하고 그에 앞서 내년 회의는 한국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회의 유치 과정을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한 이명박 대통령은 유치 성공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만세삼창이 터지고, “세계 외교사에 처음으로 중심축에 위치하게 됐다”고 공식 브리핑한 청와대에선 “단군 이래 제일 뜻있는 일을 하게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지요.


세계 금융위기 이후 G20이 경제 부문에서 G8을 대신할 새로운 협의체로 대두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그 일원이 되고 회의까지 유치한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청와대의 흥분은 아무래도 지나친 듯합니다. 피츠버그 정상회의가 끝난 뒤 회의 개최국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회견 머리에 정상회의 성과를 길게 설명했음에도, 그가 받은 질문 가운데 G20에 관련된 것은 겨우 하나였습니다. G20의 현재 위치를 상징하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정부가 G20 회의를 국격을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단군 이래 가장 의미있는 일” 따위의 과대포장을 내놓는 것은 오히려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국가의 품격>을 쓴 후지와라 마사히코는 한 국가의 품격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만들어가는 향기라고 말합니다. 과대포장은 값싼 향수를 마구 뿌려 그 향기를 없애는 꼴입니다.

 

국격을 높이려면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올봄에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문에 응한 주한 외국인들은 한국 브랜드가 저평가된 이유로 북한과의 대치, 국제사회 기여 미흡, 정치사회적 불안을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일 해답이기도 한 이 문제를 풀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남북 대치 상황도 그렇습니다. 최근 세계 언론에는 2년여 만에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에 참여한 구순의 아버지와 육순의 아들이 생이별 60년 만에 처음 만나 부둥켜안은 사진이 실렸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에 무신경했던 남북한 정부의 비인도성을 증언하는 이런 사진이 아직도 국제뉴스를 장식하게 만드는 상황을 그대로 둔 채 국가의 품격을 논할 순 없습니다. 참사 8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주검을 안치하지 못한 채 추석을 맞는 용산문제는 또 어떤가요? 참사의 원인을 두고 공권력과 주거권을 지키려던 시민들 사이의 잘잘못을 따질 순 있겠지요. 그러나 피눈물을 흘리는 희생자들을 이토록 외면하고도 나라의 품격을 높일 수는 없습니다.

 

이 대통령이 국격을 높이는 일로 제일 먼저 거론한 게 법질서 준수입니다. 그런데 어제 인준투표를 통과한 정운찬 총리를 비롯한 새 각료들 가운데 법을 제대로 지킨 사람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이들로 내각과 국가기관을 채우면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국민에게만 법질서 준수를 요구한다면 누가 그 말을 따르고 싶겠습니까.

 

그렇다고 지난 일을 탓하고만 있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통령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하겠으니 함께 노력하자며 손을 내밀면 못 받아들일 것도 없습니다. 단, 그러려면 새 출발의 징표를 내놓아야지요. 이산가족과 용산참사 해결 노력이 그 징표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을 설득해 상봉을 정례화하고 규모를 늘려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더는 없도록 하십시오. 또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주검을 안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처라도 먼저 취하십시오. 그래야 국격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다짐이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국민의 마음에 전해지고, 우리 사회도 기품 있는 향기로 채워질 수 있을 겁니다.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09.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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