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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구조조정에 직면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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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6 08:14 조회21,9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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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의 발전전략을 논의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구체적 방안을 찾는 자리였지만, 현재의 대학 상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빠지지 않았다. 어느 자리에서건 대학 밖에 있는 이들은 사회발전 속도에 비해 대학의 변화가 너무 느리다고 지적한다. 교육은 그 과정에서도 불확실성과 가변성 이 내재하는 것이 고유한 특징이다. 여론은 이를 거의 감안하지 않고 왜 성과가 늦게 나타나느냐고 질타하기 일쑤이다.

자치 상실은 '대학의 종말'

중앙대학교의 구조조정도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대학 내부 구성원이 거의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지만 사회적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이번 수시 입시에서도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고 한다. 다소 난폭한 진행에도 대학 외부에서는 응원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 모양이다.

조직과 제도의 관점에서 보면 중앙대식 구조조정의 핵심요소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내부 구성원과 토론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장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과대, 사회과학대, 자연과학대 등 기초학문 분야를 축소하고 경영대, 의대, 법학전문대학원 등을 중점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대학제도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본래 대학은 고독과 자치가 본질인 점에서 다른 사회제도와 구분되었다. 서구 도시들은 봉건 영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함으로써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지위를 획득했다. 대학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권위에서 독립하여 내부 구성원의 자유를 보장했다. 지금 중앙대는 총장을 중심으로 한 내부 구성원의 자치질서에서 이사장 중심의 명령적 지배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대학 제도는 자연과학ㆍ사회과학ㆍ인문학으로 삼분할된 근대적 지식구조의 산물이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자연과학이 철학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19세기 중반 이후 다시 사회과학의 분과 학문화가 진행되었다. 근대적 지식체계로서의 대학은 굳건한 제도적 기반을 형성했지만,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 제기도 계속 있었다. 중앙대의 구조조정안은 대학을 근본적으로 공격하고 있지만 지식구조에 대한 고민은 결여하고 있다.

중앙대식 구조조정의 결과는 어떠할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구조조정에 따르는 전환 비용이 매우 클 경우, 다시 말하면 내부구성원의 반발이 격렬하고 장기화할 경우 전환에 실패할 것이다. 그러면 깊은 상처는 남겠지만 대학의 본질은 유지된다.

전환 비용이 크지 않을 경우, 성공적으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내용적으로 명령적ㆍ위계적 조직이 됨으로써 '대학의 종말'에 이르게 된다. 학교 내부 사정만을 보면 중앙대식 구조조정은 쉽게 진행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학교 밖 여론이 구조조정안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면 학내 구성원의 반발은 진압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누가 중앙대식 구조조정에 대한 지지세력을 키우고 있는가? 나는 난폭한 구조조정을 대학 개혁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시장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아닌 대학구성원들의 타성이라고 생각한다. 지식구조가 변화하고 있으므로 대학제도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학 구성원들은 변하지 않음으로써 학생, 학부모,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면이 있다.

내부로부터 개혁 운동을

지식의 융합과 통섭의 흐름은 지금의 분과학문 체제를 변화시킬 것이다. 한편으로는 철학의 시대에 변두리에 있던 의학 법학 경영학 등 '전문' 지식이 부각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지식의 삼분할 구조가 사라지고 있으며 특히 사회과학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과학의 보편주의와 인문학의 특수주의를 새롭게 배열하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대학은 지금 구조조정 파도에 직면해 있다. 구조조정을 하되 대학의 종말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진정 능력 있는 교양인을 키우는 대학 개혁, 기존의 분과학문 체제를 뛰어넘는 일대 개혁 운동이 대학 내부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9.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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