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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愛人과 知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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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2-10 20:35 조회21,7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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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인하대 동아시아한국학 사업을 마감하는 국제회의(12.3~4)를 치르면서 '지인(知人)'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제국의 추억, 식민의 기억>이라는 주제어가 말해주듯, 동아시아를 떠도는 제국의 추억을 해체하여 역사적 기억으로 제련함으로써 공생의 아비투스를 구축하려는 집합적 토론으로 기획된 이 회의에는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지식인들이 초대되었는데,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와세다대(早稻田大) 명예교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내게 초면이었다. 나로서는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아시아 각국의 전문가들을 새로이 알게 된 고마운 기회였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식민지문화학회> 여러 분을 만나게 된 건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랄까, 기쁘기 그지없다. 이 학회의 부대표이기도 한 오오무라 선생은 발표석상(發表席上)에서 일본의 대표적 정치소설 『가인지기우(佳人之奇遇)』(1885~97)를 분석했는데, 작가 토오까이산시(東海散士)는 열렬한 민권론으로부터 청일전쟁(1894~95)을 고비로 급속히 국권론으로 경사한바 있다. 그런데 토오까이산시가 "우선회(右旋回)를 해 가는 데에는 조선문제가 시금석으로 되었습니다. 조선인식이 틀렸기 때문에 우선회해 버렸던 것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대목에서 내 마음 속 금선(琴線)이 울리는 듯했다. 일본을 비판하더라도 조선과 연계하는 일을 자제하는 것이 일본지식인사회의 일반적 기풍이거니와, 조선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예민한 점에서도 이 학회의 남다름이 두드러지는 터이다.

 

  이는 이 학회의 대표 니시다 마사루(西田勝) 호오세이대(法政大) 명예교수의 마무리 발언에서 더욱 극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천황제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알다시피 천황제는 일본지식인의 뇌관이다. 진보파들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극히 절제적이다. 이 80대의 노교수는 전혀 서슴이 없다. 그런데 그 비판의 각도가 재미있다. 그는 천황을 비롯한 천황가의 인물들이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는지 불쌍하다고 동정한다. 딴은 그럴 듯도 하다. 쇼오와(昭和)만 해도 그처럼 수많은 인민들을 전쟁의 참화로 밀어넣고도 전후, 오끼나와를 점령군 사령관에게 무상으로 공여해 또 한번 오끼나와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까지 구차히 천황제의 생존을 꾀했으니 그 자신도 오죽이나 힘이 들었을까?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선언한 천황이 거구의 맥아더 옆에 추레하게 서 있는 사진을 상기하면, 할복자살한 극우파 소설가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가 쇼오와를 맹렬히 비판한 것도 일리가 없지 않다. 전후의 상징천황이란, 이름이 그럴 듯해서 그렇지 꼭둑각시와 진배없으니, 그의 말대로, 현 천황이 더욱 무기력해 보이는 것이 어찌 우연일 것인가? 그럼에도 일본국민들은 천황제에 여전히 열광한다. 일본 국민들 때문에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다면, 일본국민들이야말로 잔혹하다고 강조하는 노교수의 말이 뭉클하기조차 하다. 천황제라는 잔혹극이라, 이제는 일본국민과 천황가가 서로에게 자유로워질 때가 꼭찬듯싶다.

 

  니시다 마사루 교수는 이제는 고인이 된 오다 마꼬또(小田實), 여전히 활약중인 이또오 나리히꼬(伊藤成彦) 선생 등과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문예평론가요 저명한 비핵(非核)평화운동가다. 일본의 근대를 일본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침략․ 점령․ 식민지화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집합적 노력의 일환으로 2007년 출범한 <식민지문화학회>는, 멀리는 <일본사회문학회>(1985), 가까이는 <식민지문화연구회>(2001)의 후신이니, 이 학회와 이제야 만나게 된 게 만시지탄(晩時之歎) 속에서도 2009년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지(知)'란 무엇인가'란 번지(樊遲)의 질문에 '사람을 알아보는 것(知人)'이라고 답했다.(『論語』 顔淵篇 ) 제자가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곧은 사람을 들어 굽은 사람들 사이에 두면, 굽은 사람들도 곧아지게 된다(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고 부연하였다. 한 주석자는 '곧은 사람을 들어 굽은 사람들 사이에 두는 것'이 '지'이고, '굽은 사람들을 곧아지게 하는 것'은 '인(仁)'이라고 풀었는데, 공자는 바로 앞에서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답한바 있다.

 

'인'의 실천 즉 사랑한다는 것은 따라서 굽은 것을 곧게 하는 일이매, 말하자면 개조사업 내지 혁명사업인 게다. 온 세상이 곧아지는 '인' 또는 사랑의 사업은 사람의 능력과 성정을 제대로 아는 지혜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지인'은 그 기초다. 공자가 왜 그토록 지인을 강조했는지 요즘에야 조금 짐작이 간다. 정말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근심하라." 어느덧 2009년이 저물어간다. 한해를 보내는 이 지혜의 계절에 눈을 크게 뜨고 한세상을 품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공업을 열심히 짓자,고 다짐해 본다.


최원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장)

(서남통신, 2009.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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