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혼돈 속의 분단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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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16 14:12 조회22,4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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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정부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지만, 집권세력이 쉽게 태도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보수세력의 향도를 자임하는 언론은, 정부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꾸짖는 데 열중이다. 정부가 수많은 실정을 저질러도 굳건한 지지세력이 있다.
보수층 고착화ㆍ지배체제 결속
지난 주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27.3%,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 30.3%로 나타났다(한국일보 6월 10일자). 수치가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의 목소리와 의심은 60년 동안 한결같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또 다시 분단체제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분단체제에서 남북한은 각자 자신의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지배층은 적대적이면서도 다분히 상호의존적이다. 이번에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지배체제를 결속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남한의 집권층은 반북 정서를 매개로 통치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고자 할 것이다. 반북 정서는 남한 시민사회의 상상력과 행동반경을 제한하며, 보수층을 극우세력으로 고착화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이제는 분단체제가 안정적으로 재생산되기 어렵다. 북한은 핵을 담보로 대외적 협상력을 드높이려 하고 있지만,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무역제재가 강화될 경우 15억~37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6년 북한의 국민총소득을 84억~89억 달러 정도로 추정하는 연구결과가 있음을 감안하면, 제재의 강화가 북한에게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 일반 주민들의 고통은 심각해질 것이다.
한국 내에서도 위협과 긴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분단세력의 수익이 크게 줄었다. 압도적인 추모열기 탓도 있겠지만, 2차 핵실험의 파장은 2006년 1차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였다. 핵실험의 무모함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핵실험 당일에도 이 문제가 한국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전날의 코스피지수가 1,403.75 였는데, 핵실험 당일의 종가는 1400.9였으며, 주가 하락세는 3일을 넘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분단체제가 변화하는 세계체제로부터 분리(delinking)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형성된 동서대결의 세계체제는 남북대결의 한반도 분단체제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북한의 반미ㆍ반남 이데올로기와 남한의 친미ㆍ반북 이데올로기는 동서 양 진영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는 남북한 각각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기반이었다. 그러나 세계체제가 분단체제에 앞장서서 먼저 변화하면서, 분단체제에서 이익을 구하는 세력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있다.
사회주의권 붕괴, 중국 성장, 영미형 시장만능주의 후퇴 등을 거치면서 세계체제는 '20세기'와 작별하고 있다. 이제 한동안 미국과 함께 중국이 세계체제의 헤게모니를 공동 관리하는 시기가 전개될 것이다. 6자회담이 무력화된다면, 한반도 문제의 결정권은 미국과 중국의 손에 더 많이 쥐어질 것이다.
이번의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도 7개국이 함께 검토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 주도한 것이다. 또 다음 달 워싱턴에서 미국ㆍ중국ㆍ일본의 3국 고위 정책대화가 열린다고 한다. 중요하고도 속 깊은 얘기가 오갈 것이다. 한반도 문제가 한반도를 떠나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 벗어나는 '남북한 해법'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본다. 북해의 왕인 홀(忽)과 남해의 왕인 숙(熟)이 중앙의 왕인 혼돈(混沌)의 나라에서 만났다. 혼돈은 그들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20세기의 남과 북의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와 그런대로 잘 조응했다. 이야기에서는 숙과 홀이 혼돈에 이목구비의 7개 구멍을 뚫었는데, 그러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지금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와 분리되어 길을 잃고 있다. 현실에서는 혼돈이 죽지 않고 숙과 홀을 삼켜버릴 것만 같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09.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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