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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육아정책은 국가발전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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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03 17:30 조회34,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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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산이 세 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직장 여성들의 처지입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16개월 된 아기를 둔 후배에게 아기의 안부를 묻자 후배는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봇물처럼 쏟아냈습니다. 조선족 아주머니를 육아도우미로 쓰고 있는데,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해서 걱정이 태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 생전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도 아이 보는 사람 어디 없냐고 묻는답니다. 괜찮은 도우미를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니 제대로 된 육아는 꿈도 못 꾼다 하고요. 육아지침서는 아기 음식은 이렇게 먹이고, 버릇은 저렇게 들이라고 일러주지만, 도우미에게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랍니다. 상황이 이러니 교사가 아닌 친구들은 대부분 아기를 낳고는 직장을 그만뒀다며 후배는 한숨지었습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직장 여성의 육아 여건은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선 더 나빠졌다고도 할 수 있지요. 저희 때는 부모님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 키워 달라는 딸·며느리 퇴치법이란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기대하기 힘든 일이 됐습니다. 육아의 책임은 오롯이 아이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의 몫이 된 거죠. 이러니 어떻게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겠습니까? 출산율에서 연신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육아 여건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적극적 노력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정책도 시늉에 그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영유아에 대한 국가필수예방접종 지원 문제가 단적인 예입니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0~12살 아동에게 비시지(BCG), 비(B)형 간염, 폴리오 등 8종의 백신을 민간 의료기관에서 접종해도 30%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대부분은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정부가 약속대로 100% 지원을 하든지, 정 예산을 늘릴 수 없으면 접종 대상 연령을 낮춰 해당 연령대만이라도 100% 지원하라는 겁니다.

 

무료 예방접종은 2006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전염병 예방법을 개정해 법제화됐지만 전제로 했던 담뱃값 인상이 무산돼 미뤄졌습니다. 정부는 올해부터는 100% 지원하겠다고 확약해놓곤 또다시 금융위기를 핑계로 30%로 지원 규모를 줄였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에 투입되는 돈은 22조원에 달합니다. 서울시가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둔치를 뜯어고치는 일 등에 올해 투입하는 비용은 2361억원이고 거리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는 일 등에 쓰는 비용은 345억원이 넘습니다. 소아과 의사들은 이런 일 하려고 무료 접종에 필요한 돈 800억원을 줄이는 게 납득이 가냐고 묻습니다.

 

2005~2010년 사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3명으로, 세계 평균의 절반도 못 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나라 인구는 2019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고, 205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생산가능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지금도 허덕이는데 그땐 어떨까요? “저출산 문제를 생각하면 등에 활활 타는 불을 지고 있는 기분”이라고 한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말처럼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흥망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인 저출산 대책인 육아·보육정책을 핵심적인 국가발전전략으로 인식해야만 합니다. 토건업체의 주머니를 불려주느라 아이 키우는 일을 몰라라 하다간 미래세대로부터 나라를 망친 원흉이란 지탄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09.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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