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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침묵의 카르텔과 방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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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17 07:04 조회34,2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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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민주노동당이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습니다. 쌍용자동차 노조에 대한 진압에 항의하는 평택 집회 현장에 있던 기무사 소속 대위가 지녔던 수첩, 동영상 자료, 신분증 등을 근거로 제시한,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폭로였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선 그 기사를 볼 수 없었습니다. 휴가 나온 장병의 집회 참여 예방과 군 관련 문제를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는 기무사의 해명은 동영상이나 수첩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기무사의 탄생도 전신인 국군안사령부(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이 폭로돼 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이 물러나고 1991년 조직을 전면 개편한 데 따른 것이니 군의 민간인 사찰은 예민하기 짝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이들 신문이 약속이나 한 듯 이를 외면한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해당 신문 내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상식에 부합한 결정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상식과 다른 지면구성의 예는 이번뿐이 아닙니다. 천성관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의 검증 관련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천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그를 지명했던 대통령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거짓말로 일관했지만 그들의 비판은 무디기 짝이 없었습니다. 검증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의 시늉을 낸 것도 청와대가 비등하는 여론을 고려해 자진사퇴시키기로 결정한 다음이었습니다.

 

전 정권에 대해선 날카롭기 짝이 없던 비판의 날이 이토록 무뎌진 것을 이들의 방송 진출 의도와 관련해 보는 항간의 시선도 무리는 아닙니다. 날치기 처리된 방송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중앙일보는 방송추진팀 발령을 냈고 다른 신문들 역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니 방송 진출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벌써부터 정권의 눈치를 살피고 알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가 소중히 여겨지는 까닭은 언론이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권력을 비판·감시해주리란 기대가 있어섭니다. 그러나 실제에선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 또는 언론사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신문과 방송의 신뢰도가 역전된 게 그 방증입니다. 독재권력 치하에선 ‘땡전뉴스’라는 모멸을 받은 방송에 비해 행간의 의미라도 부여하려는 개별 기자의 노력이 가능했던 신문이 더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이 줄면서 공적 지배구조를 갖는 방송은 공영성이 강화된 반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거대신문들의 속성이 드러나면서 신뢰도는 역전됐습니다.

 

며칠 전 몇몇 언론사 간부가 외부의 초청으로 모인 자리에서였습니다. 초청인사가 언론관련법에 대한 의견을 묻자 조중동 중 한 신문의 간부는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방송의 여론 독점 방지니 다양화니 하는 그동안의 주장은 허울로 내세운 명분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더 큰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경제권력의 일탈행위를 감시할 언론 본연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물론 거짓도 불사하는 모양입니다. 이들이 방송마저 장악해 정언유착·권언유착을 노골화할 경우, 그동안 힘겹게 쌓아 온 민주화의 퇴행 속도와 범위가 지난 1년 반보다 더 빠르고 더 넓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러므로 언론관련법에 대한 헌재의 양식있는 판단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사익추구 집단임이 드러난 족벌·재벌 언론에 대한 시민적 감시운동을 더욱 강화해야겠습니다. 임기 없는 언론권력에 의한 여론 독과점을 막는 일은 한국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까요.

 

권태선 논설위원

(한겨레. 2009.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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