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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대학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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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9-07 09:19 조회32,9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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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을 맞았다. 신종플루 걱정이 있었지만 건강한 모습들이어서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얼굴들도 적지 않았다.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방학이 꼭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학교를 쉬거나 떠나는 경우가 꽤 있다.

현장에서 휴학생들과 면담한 결과를 보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학비 부담과 취업 준비의 이유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외국어 훈련과 각종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으로 떠나간다. 외형은 커졌으나 또한 그늘이 깊어진 대학의 모습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등록금, 빈약한 교육여건

높은 대학등록금 문제는 통계로도 뚜렷이 확인된다. 국민 개개인의 경제능력, 즉 1인당 GDP대비 등록금 수준(2004~2005년)을 보면, 한국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국공립대의 경우,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 국가들은 무상교육이 대부분이다. 미국, 호주, 일본 모두 12% 남짓인데, 한국은 17.1%나 된다. 사립대의 경우, 미국이 44.8%인데, 한국은 그 뒤를 이어 32.7%다. 영국 5.7%, 일본 19.5%, 호주 23.8%에 비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200만 명에 달하는 대학생과 그 부모들로부터 아우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로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가장 큰 혜택은 대학 측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대학은 등록금 수입을 훨씬 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학생들이 학비를 낼 수 있는 능력은 실제보다 높게 측정될 가능성이 많다. 소위 명문 대학들을 중심으로 등록금을 더 높게 책정하고 학생들은 더 많은 돈을 대출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중도에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 중 일부는 대학교육에 대한 근본적 회의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학이 장래의 직업과 수입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차원을 넘어 삶의 의미를 일깨우지 못한다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의 핵심은 강의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강의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자신들을 유능하게 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대학이 좋은 강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차적 요인은 빈약한 교육 여건이다. 대학의 교육환경 악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급속히 진전된 규제 완화와 관련이 깊다. 1996년 대학정원 자율화 조치에 따라 대학의 설립과 운영의 기준을 대폭 낮추었다.

그 결과 대학의 품질은 계속 저하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잘 나타내는 교육통계는 대학의 전임교원 확보율이다. 정부가 제시한 법정 기준은 2005년에 이르러 연구중심대학 55%, 전문대학 40%까지 하락했다. 2005년도 말에야 정부는 규제 완화를 중단하고 규제 강화로 돌아섰다. 2009년에는 법정 기준을 연구중심대학 65%, 전문대학 50%로 올렸지만, 이 수치 자체가 대학 강의의 낮은 수준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입장에 서서 해법 모색을

여건이 좋다고 해서 강의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의 경우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외부기관의 평가를 개선하는 데 주로 사용하고 있다. 교수들의 연구업적이나 국제화지표에는 지나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열성적인 강의를 하는 교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있다.

근대초기에 형성된 학문분과에 기초한 학과제도도 복잡해진 세계에 적극 대응하는 새로운 강의의 출현을 어렵게 한다. 교육을 중심에 놓지 않은 채 연구업적을 중시하고 경직된 학과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학생보다는 교수와 학회를 더 보호하는
제도 설계라 할 수 있다.

학생들 입장에 선다면, 높은 가격, 낮은 품질이라는 대학의 문제가 선명하게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는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대학들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9.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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