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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사회적 논의기구'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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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12 11:41 조회20,8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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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입법 전쟁이 최악의 충돌을 면한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기던 차에 다시 국회가 쟁투 속에서 마감되는 모양을 보노라니 절로 한숨이 난다. 여당 출신이면서도 끝내 직권상정을 자제한 국회의장의 충정도 그만 빛을 잃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비록 여당 우세로 끝났다 할지라도, 우여곡절 끝의 타협 이후 국회가 이제는 그런 대로 대화 국면으로 들어서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가 없지 않았다. 기왕 한 고비 넘겼으면 주고받는 절충 속에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최악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나 역시 책상물림이다. 

그런데 이런 순진한(?) 생각이 국민 속에 강력히 존재한다는 점을 새삼 환기하고 싶다. 교황청조차 놀라게 한 추기경에 대한 애도 물결, 홀연히 나타난 이 새로운 촛불집회가 그 환한 반증의 표현일 터. 제발 싸움 좀 하지 말고 머리 맞대고 나라 살림살이를 걱정해 대책을 세우라는 지상명령이 너무나 뚜렷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회 초년생의 구직난은 물론이고 이제 실직의 칼바람이 바로 옆에까지 다가오는 요즘, 우리는 누구나 1997년 겨울을 엄습한 그 위기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음을 실감하는 중이다. 지난 금융 위기를 감당한 김대중 정부처럼 이명박 정부의 사명 또한 중차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새로운 거버넌스’ 구성에 찬성하는 까닭


지지 여부를 떠나서 나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무능은 차치하고 어찌 그리 도량이 좁아 일마다 부딪치는지 뉴스 보기가 겁난다. 보수 정권이 개혁 정권들의 피로를 걷어내는 작업을 그야말로 효율적으로 해내야 개혁파도 한양(閑養)하면서 다시 태어날 궁리를 할 것인데, 여당이 속절없이 추락하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여당의 좌초가 야당의 갱신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 탓인지 야당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높다고 하기 어렵다. 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것은 지지율 정체가 뚜렷이 가리키는 바 아닌가. 아직도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앙금이 가시지 않은 데다 야당의 위상을 찾기도 전, 성과 없는 대소 전투에 휘말린 탓에 국민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여야를 떠나 국민의 냉담한 (무)관심에 내몰린 정치권은 그리하여,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러하듯 더욱 가망 없는 다툼 속으로 빠져드는 것인가? 이렇게 가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타협 속에 대안을 마련하는 성숙한 정치에 대한 내밀한 원망에도 불구하고, 파경적 충돌을 향해 어두운 숙명처럼 마주 보고 돌진하는 기관차를 보는 듯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정치적 불행을 저지할 제3의 무엇이 우리 사회에 부재한다는 점이다. 중재를 주선할 그 어떤 기구, 그 어떤 제도, 또는 그 어떤 세력도 결여되어 있다. 예전 같으면 시민운동단체들이 그 역할을 일정하게 수행했다. 아다시피 그들도 지금은 심각한 조정기에 들어선지라 선뜻 나서기도 어렵고 나선들 왕년처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도 어려운 국면이다. 또 예전 같으면 난국에 처했을 때 찾아가 자문하고 때로는 중재도 부탁할 수 있는 원로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틈에 우리 사회는 원로 부재의 시대로 들어서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예전에는 ‘3김’으로 상징되듯이 원로 또는 보스의 지배가 너무 강해 문제였다. 그런데 나라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퇴장한 보스들이 진정한 의미의 원로가 되지는 못한 기묘한 과도기에 우리는 놓인 것이다. 청 제국을 붕괴시킨 신해혁명(1911년)이 결국 군벌의 난립을 가져왔던 역사적 경험을 상기한다면 우리 사회가 혹 그리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란 방정맞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 사회를 가파르게 분단하는 선들을 가로지르는 대화를 조직하는 논의를 일으키는 일이 종요롭다. 백낙청 교수가 최근 제기한 ‘새로운 거버넌스’, 즉 “합리적 보수와 책임 있는 진보가 협력해 폭넓은 중도세력을 형성하면서 정부 및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동참하는 일종의 거국체제”를 구성하자는 제안은 때를 맞춘 것이다. 이 점에서 입법 전쟁의 와중에 미디어법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한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싶다. 이에 대해 벌써부터 논란이 거세지만 부디 그런 소승적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가 당면한 난국을 넘어설 중지를 모으는 그런 논의의 근사한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사안별 논의 기구들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과정에서 21세기 한국이 추구할 창발적 모델을 토의하고 합의하는 대토론으로 발전한다면 오죽 좋으랴!

 

최원식 인하대 교수, 한국어문학과

(시사IN, 2009.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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