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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냉전의 덫에 갇힌 미국의 중국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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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10 08:33 조회22,1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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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부터 연구년을 맞아 하버드에 체류하고 있는데, 얼마 전 페어뱅크 중국 연구소가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콜로키움 프로그램의 하나로 중국 민족주의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예일대학 역사학과 피터 펄듀(Peter C. Perdue) 교수의 발표였는데, 중국 민족주의가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콜로키움 모임답지 않게 초만원을 이루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콜로키움이 끝난 뒤 세미나 룸을 나서는 대륙에서 온 중국학자들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미국이 중국을 악마로 만들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중국 민족주의의 수사학’이라는 제목의 이날 발표는 최근 중국 젊은 세대의 민족주의 열풍을 예로 들며, 중국 민족주의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barbarism)이며 강한 복수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펄듀 교수는 예전에 MIT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난징학살과 관련한 미국 교수의 강의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여 홈페이지를 다운시킨 일에서부터 최근 중국 대륙의 네티즌들의 민족주의 열풍, 그리고 20세기 중국의 민족주의까지를 거론하며, 그런 것들이 일시적이고 우연한 폭력성이나 야만성이 아니라 중국 문화 전통에 내장된 본질적인 폭력성과 복수의식, 타자 배제 의식의 소산이라고 진단하였다. 심지어, 월 나라의 구천이 날마다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지를 다졌던 ‘와신상담’ 고사까지 예로 들며 중국 민족주의가 서구에 대한 복수의식을 표출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중국 민족주의와 중국 문화의 본질적인 야만성을 지적하는 그날 발표는 사실 한국인인 필자로서도 듣기에 좀 거북하였기에, 중국인들, 특히 대륙 출신의 중국인들이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일면 이해할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자리에 모인 대다수 미국 학자들의 경우 그 발표에 공감하는 질문과 코멘트가 많았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 ������불쾌한 중국������이라는 민족주의 서적이 인기를 누린 것도 그렇게 공감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공산당이 일당 독재하는 공산주의 중국을 이처럼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악마적이고 야만적인 속성을 지닌 나라로 보는 견해가 미국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고, 어찌 보면 미국 사회나 학계의 보편적인 주류 관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날 발표는 GM 자동차가 중국 공장을 중국 기업에 매각하겠다고 하자 CNN이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에게 팔 수 있느냐고 흥분한 것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사실, 하버드에 와서 놀란 것이 중국 관련 강의가 지닌 편향성이었다. 하버드에는 문화대혁명에 관한 두 개의 강의가 매 학기에 교대로 개설되는데, 특히 교양필수인 외국문화의 이해 코어 과목의 하나로 문화대혁명을 다룬 강의가 개설되어 있는가하면 중국 역사가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얼마나 폭력적 속성을 지녔는지를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는 강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근현대를 다루는 강의에서 공산 혁명 부분을 아예 거론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 강의를 듣는 하버드 대학생들은 중국 역사가 얼마나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를 배우게 되고 현대 중국의 이미지를 문화대혁명을 통해 갖게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중국을 기본적으로 야만적이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보는 인식틀에서 보자면 최근 중국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더구나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크게 부상하는 것은 전세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재난의 징후로 보게 되고,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새로운 공포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오랜 냉전적 영향과 더불어 최근 일련의 사건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최근 미국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는 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고 있는 상황, 티벳사태 등이 맞물리면서 미국 사회에서 냉전 시대에 유행하던 중국에 대한 부정적 기억이 다시 소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배경에서 대두되고 있든지 간에 중국이 본질적으로 악인지의 여부나 중국의 부상이 세계에 재난이 될 것인지의 여부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이러한 미국 학계의 중국 인식이 미국 중국 학계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고 정체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공산당 일당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 되는 나라라는 관점, 크게 사고를 칠 가능성을 늘 안고 있고,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문제아로 보는 중국관에 미국 학계에 갇혀 있는 한, 민주주의는 없어도 민간의 힘과 역동성이 크게 증대되고 있고, 관방과 비관방의 경계가 흐려지고, 중공당과 정부, 민간, 시장자본이 확연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엉키면서 연출하는 오늘의 중국의 모습을 해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지난 봄, 중국 작가 위화가 하버드에 와서 강연과 중국 문학 연구자들과 토론회를 할 때도 미국 학자들의 관심이 중국의 검열 시스템에 집중되고, 한 연구자가 위화를 반관방에서 친관방으로 전환하는 작가로 규정하려고 한 것도, 미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관방/반관방, 공산정권에 대한 저항/협력이라는 냉전적 이분법에 사로잡혀 중국을 읽기에 실패하는 전형적인 패러다임의 한 예일 것이다. 중국은 곧 망할 것이고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해오던 미국 학계가 최근 들어 중국이 왜 망하지 않는지, 그 비밀을 해명하기 위한 연구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도 역설적으로 냉전틀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계에 직면한 미국 중국 학계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하버드의 중국 연구가 미국 중국 학계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학계에 이러한 중국인식이 넓게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 이런 미국 중국학계의 현실에서 발견한 것은 오히려 한국 중국학계의 희망이다. 물론 한국의 중국학계 역시 과거에 냉전의 틀에 갇혀 있었는가하면, 사회주의 중국에 대해 과도한 의미부여하는 등 두 극단의 연구 편향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 편향을 넘어서고 있고 중국을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급변하는 중국을 민감하게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있는 한국의 중국학계에 오히려 희망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

(서남통신. 200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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