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연] 미국 대학의 중국 ‘80후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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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7-06 11:26 조회29,3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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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에 중국인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과거처럼 타이완 출신이나 홍콩 출신이 아니라 대륙 출신 중국인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대륙 출신 본과생들과 대학원생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최근에는 펠로우나 방문학자 프로그램 등으로 미국 대학을 찾는 중국학자들이 작년부터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체류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옌칭 동아시아 연구소와 페어뱅크 중국 연구소의 경우 내년부터 중국학자들의 비율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지 않도록 강제로 조종하겠다고 나설 정도이다. 중국학자들이 많다보니 옌칭 연구소의 경우는 방문학자들이 휴게실에서 중국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일도 있었다.
하버드 대학을 비롯하여 미국 대학들에 대륙 출신의 젊은 중국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중국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해외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그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정부의 새로운 인재 양성 정책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작년부터 매년 4천 명에서 5천 명의 박사과정 수료생 내지는 젊은 부교수급 학자들을 중국 정부 장학생으로 1년간 해외에 파견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한 때문인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초청장을 받을 경우 중국 정부의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기에 미국 동부와 서부의 유명대학들에는 1,2년 사이에 중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 유명 대학의 동아시아 전공 관련 교수들도 고초를 겪고 있다. 자신의 연구 스폰서 교수가 되어달라는 중국학자들의 요청이 밀려들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는 2007년부터 ‘인 바운드’ ‘아웃 바운드’ 인재 양성 정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지원하면서 외국 학생들을 중국 유명 대학에 유치하는 ‘인 바운드’ 정책과 동시에 중국 학생들을 대규모로 해외 유명 대학에 내보내고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청년 학자 해외 파견 프로그램은 청나라 말에 청나라 정부가 일본에 패한 뒤 충격을 받고 새로운 근대 문물을 파견하기 위해 대규모 국비 유학생을 일본에 파견한 이후 최대 규모이다. 물론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가 줄곧 국비유학생을 구미 지역에 주로 파견하여 왔지만, 이들은 주로 이공계 인재들이었고 규모도 작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 파견 프로그램은 1년 과정으로 인문,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대규모로 포함되어 있고, 무엇보다 주요 대상자들이 중국의 신세대인 80년 이후에 출생한 이른바 ‘80후(後, 빠링허우)’세대이다.
물론 이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한 달에 1천1백 달러를 지원해주니까, 미국에서 생활하기에는 부족한 액수이다. 그렇다보니 대개 한 집에서 여럿이 거주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80후’세대는 개혁개방의 혜택을 누리면서 자란 세대로 1자녀 정책에 따라 가정에서 ‘소황제’라고 불리면서 편히 자란 세대들인데, 이제 미국에 와서 힘든 생활을 체험하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미국에서 공부한 중국학자들처럼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달리 대개의 경우 중국에 있는 부모에게서 일부나마 지원을 받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의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나름의 전공 실력도 상당히 갖추고 있고 영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매년 5천 명의 젊은 중국 학자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와 대학, 학계를 체험하고 다시 중국에 돌아갈 때, 이들이 장차 중국 사회와 학계의 든든한 기둥이 될 것이다.
중국의 미래를 책임질 이들 중국인의 미국 사회 체험은 이들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들에게 미국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한결 같은 답이 중국과 별 차이 없다고 말한다. 조금 부유하기는 하지만 베이징이나 상하이, 광저우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중국인들이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이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바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온 일이었다는 농담이 중국에서 유행하던 시대가 이제 지나고 있는 것이다. 서구에 대해 콤플렉스나 위축감이 없는 세대가 현대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들은 미국이나 중국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차별하는 것에 견딜 수 없어한다. 적어도 필자가 하버드에서 접한 이들을 대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한결같이 미국에 온 뒤 자신들이 전보다 훨씬 좌파가, 무엇보다 민족주의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시기에 미국에 체류하다 보니 더욱 그렇겠지만 이들은 미국 사회를 직접 목도하면서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실망을 느끼게 되었고, 미국에서 겪은 크고 작은 굴욕과 무시의 체험으로 인해 반미 정서와 민족주의 정서가 강해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버드에 체류하고 있는 상하이 푸단대학 출신의 한 박사과정 수료생은 미국은 중국 민족주의의 양성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미국에서 ‘코뮤니스트 차이나’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과 거부감이 강해지고, 이런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80후’ 세대의 경우 예전의 중국인들에 비해 서구나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상대적으로 약한 세대이고, 1자녀 정책으로 자라서 강한 자존심을 지닌 세대인데, 미국에서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굴욕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면서 강한 민족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주로 미국과 서구에 파견하는 ‘80후’ 세대의 뛰어난 청년 학자들 4, 5천 명이 미국과 서구 사회를 몸소 체험한 뒤 예전보다 강해진 민족주의 의식을 지니고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 그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 대부분이 중공당원들인데다 실력까지 갖춘 젊은 인재들이라는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작금의 중국에서 강하게 일고 있는 반미, 반서구 민족주의 흐름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대중적인 유행 현상을 넘어 학문 방향이나 중국의 국가 진로와 발전방향 설정에까지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
(서남통신 2009.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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