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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쌍용차와 한국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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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10 08:43 조회33,2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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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국의 농촌 기업을 살펴보기 위해 산둥성(山東省)을 방문했다. 베이징에서는 한국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지만, 산둥성에는 한국인들이 많고 한국 사정에 대한 관심도 각별한 편이다. 중국에서 본 텔레비전 뉴스에서의 쌍용차 공장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여기에 한국농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감상이 겹쳐졌다.

어쨌거나 쌍용차 파업이 노사간 합의로 종결되고, 파국과 참사를 피하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이들에게 무자비한 시장 원리주의만을 설교해야 소용없는 일이니, 인명피해가 나지 않기만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그러나 상황이 일단 마무리되었으니 실패의 교훈을 짚어야 할 것 같다.

중국 현지서 본 우리의 실상

먼저, 외국 투자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다. 회사를 헐값에 매수해 기술만 유출한 후 무책임하게 손을 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도 그다지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시각이다. 상하이자동차에게 계약과 관련해서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목은 구체화된 적이 없다.

오히려 중국 내의 여론은 한국 정책당국이나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중국 기업이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기업이었다면 이런 대접을 받았겠나 하는 격앙된 감정도 있다.

다음으로, 강력한 투쟁이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집착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가 투쟁의 위협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를 국가가 운영하도록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기업의 파산 위기 앞에서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조의 사고방식을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해고자에 대한 재취업 알선이나 분사 및 창업 지원 등의 방안을 모색하는 주장을 했다면 더 많은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중국 땅에서 다시 보니 한국농업도 쌍용차와 비슷한 문제 틀 속에 있지 않나 싶었다. 국내에는 중국 농산물에 대한 과도한 폄하의 분위기, 정책적 보호를 통해 생산자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것이 한국농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걱정이 생겼다.

한국 소비자들의 국내 농산물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기 짝이 없다. 참으로 고맙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의 생산지에서는 중국 농산물에 대한 한국의 평가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호소를 쏟아냈다. 한 기업의 책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의 바이어 품질과 규격 조건을 제시하고 다음에 가격을 묻는다. 한국의 바이어는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가격에 품질을 맞춘다. 중국은 일본에도, 한국에도 훌륭한 품질의 농산물을 공급할 능력이 있다."

중국 산둥성은 농업을 집단화한 첫 번째 혁명과 집단농장을 해체한 두 번째 혁명에 이은 세 번째 농업혁명, 즉 '농업산업화'를 선도하고 있는 곳이다. 농업산업화란 생산 유통 가공을 장기 계약관계에 의해 계열화한 수직적 조정(vertical coordination)의 일종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기업과 기지(基地)와 농가를 결합하는 모형이다. 기지란 대체로 대규모 농장 또는 축사를 의미한다. 가공 보관 등을 위한 시설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규모화는 농가가 보유한 농지 사용권을 매수, 임차, 교환, 분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또 기지를 확보하는 경우 안전하고 안정적인 원료 확보와 이력 추적이 가능해진다. 수출 농산물의 경우 국가상품검사국이 품질기준을 적극 관리하고 있다.

열쇠는 투쟁이 아니라 조정

중국 농산물의 잔류 농약에 대해서는 일본 등지에서 문제 제기가 많았다. 중국 소비자들의 불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농업산업화를 통한 의식적인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농산물의 품질관리는 개선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생산 유통 가공 사이에 장기 계약관계를 형성하여 소비자가 수요에 대응하는 것은 세계농업의 지배적인 추세이다. 미국은 기업이, 덴마크는 협동조합이, 중국은 기업과 지방정부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어느 경우에나 문제의 열쇠투쟁이나 보호가 아니라 연계와 조정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9.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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