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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미디어 악법의 민주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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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11 21:11 조회34,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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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악법 날치기를 시도할 때 대략 염두에 둔 것일 게다. 엄정한 법안 심사는 물론이고 의결 절차조차 지키지 않았다 해도 미디어악법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행정 절차를 밀어붙이는 동안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를 덮칠 것이다. 야당이 거리에 나가 미디어악법 원천무효를 외치며 싸우더라도 사람들은 바다와 계곡으로 떠나고 없을 것이다. 그때 서민 정책 몇 개를 공표한다. 아직도 대통령에 대한 전근대적 심성에는 짜내서 활용할 바가 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그런 정책을 엠비(MB)의 자애심에서 나온 것으로 포장하자.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사태를 엠비의 이미지와 분리하자. 이런 이미지 분리의 정점으로 광복절을 맞아 대통령이 권한인 사면을 활용하자. 그렇게 하면 서민을 ‘낚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며, 그렇게 해서 미디어법 날치기 국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헌재도 한결 편하게 정부가 원하는 결정에 이끌릴 것이다.

 

이런 초보적 정치공학이 진행됨에 따라 그것의 새로운 이익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미 상당히 장악된 방송 매체와 조중동이 합세해서 열심히 서민 정책을 떠들어 대면, 비판적인 언론들은 엠비의 서민 정책이 내실 있는 것인지, 정말로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따지게 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일만도 아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그런 신문 지면에서조차 미디어악법은 뒷면으로 밀려날 것이니 말이다.

 

조중동으로서도 좋은 일이다. 신문 앞면에서는 정부의 서민 정책을 중계하고, 뒷면에서 그런 것들이 너무 포퓰리즘적인 것 아니냐고 비판(?)하면 된다. 이 비판의 부수 이익은 상당하다. 조중동과 정부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오히려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라는 외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디어법 통과를 위해 공조하느라 둘이 한 몸뚱이나 다름없음을 노출해 왔는데, 그건 사실 좀 위험하다. 정부 기관지가 되는 것은 의미있는 언론기관인 척하는 것을 어렵게 해 영향력을 더 급격히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조중동의 비판은 엠비에게도 도움이 된다. 엠비는 언필칭 친서민 행보를 중도실용 노선으로의 복귀라고 선전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보이려면 이념적인 보수신문의 비판이 일정한 도움이 된다. 보수신문의 비판조차 받지 않는다면 중도실용이라고 불리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엠비 정권은 조중동의 비판을 자신이 중도실용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삼는 동시에 그 비판을 중도실용적이려는 노력을 제약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정으로 원한 것인 중도실용이라는 외양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법이라는 의제의 중심성을 유지해야 한다.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냥 넘길 성질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에서 국민주권이 여론과 그 여론으로부터 형성되는 집합적 의지 형성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숨 쉬고 있겠는가? 여론이 건강하고 활력 있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주권은 오직 간헐적 투표의 순간으로 퇴행할 뿐이며, 그 투표 행위조차 쇠락하게 마련이다. 그 여론의 건강을 규정하는 것이 미디어 체제의 민주성이며,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법은 국민주권적 사안이다. 그러므로 미디어악법의 재민주화를 위해 헌재에 다수 시민들의 의지를 알릴 모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당과 시민운동이 결합해 집회도 하고, 모두들 서명도 하고 인터넷에 열심히 글도 써야 한다. 헌재가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럴 때도 끝내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민주적으로 다시 고쳐놓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09.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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