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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분열하는 레이펑(雷鋒)에 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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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5-25 16:50 조회21,6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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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한국 어린이들에게 이승복이 있었다면, 중국 어린이들에게 레이펑(雷鋒,1940-62)이 있다. 한 평범한 인간이 갑작스럽게 국가 영웅으로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그 영웅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교육의 상징으로 작동하는 과정 등에서 둘은 많이 닮았다. 한국 어린이들은 해마다 10월에 이승복을 기념하는 반공 글짓기를 통해 반공 의지를 키웠다면, 중국 어린이들은 해마다 3월에 레이펑을 본떠 일기에 자기가 어떤 착한 일을 했는지를 쓰고, 그것을 선생에게 검사를 받으면서 사회주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승복이 그러했듯이, 레이펑 역시 어린이들에게 깊은 정신적 외상을 입힌 국가 영웅이고, 국가 이데올로기 주형에 맞추어 국민들을 찍어내려고 했던 극단적인 국가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 레이펑이 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인 올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작년부터 레이펑 역을 맡을 주연을 두고 화제와 논란이 일었던 레이펑 드라마가 지난 4월에 촬영을 시작하면서 레이펑 열기에 불을 당기고 있다. 이 드라마는 올해 10월 건국 기념일 전후에 중국 전역에 방송될 예정이다. 마오쩌뚱이 1963년 3월 ‘레이펑에게 배우라’고 한 뒤로, 해마다 3월이면 관방에서 기획하는 레이펑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이점에서 보자면 올 봄의 레이펑 열기도 새로울 것이 없다. 중국 경제는 발전하지만 이데올로기 시스템은 마오 시대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실한 사례로 볼 수도 있고, 관제 이데올로기인 레이펑 신화에 아직도 부화뇌동하는 중국 민중들의 우매함을 상징하는 사례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봄에 일고 있는 레이펑 열기는 과거와 다르고 새롭다. 왜 그런가? 레이펑을 되살리고 기억하는 주체가 과거에는 국가-당이라는 단일 주체였다. 하지만 민간과 자본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이제 국가, 민간, 자본이 레이펑에 대한 기억을 두고 서로 공유, 공모하기도 하고 서로 대립하기도 하면서 레이펑 유행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회주의 정당과 국가, 그리고 민간, 이윤을 쫒는 자본이라는 중국의 3대 문화 생산 주체들이 공모와 분열, 결탁과 대결하는 가운데 어떻게 사회적, 문화적 유행이 만들어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레이펑은 원래 공산주의 청년단원이자 공무원이고 군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죽은 뒤 영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의 헌신적인 봉사 정신을 보인 것이 그가 탁월한 사회주의 정신과 중국 인민해방군의 정신을 지닌 공산주의 소년단과 청년단원이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는 중공당과 국가가 그렇게 기획하여 만든 영웅이고, 그러한 국가의 해석과 기억은 해마다 봄에 중국 국민들에게 반복적으로 유포해 왔다.

 

대다수 중국인들은 레이펑에 관한 이런 국가의 해석과 기억을 지금도 여전히 수용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니, 그런 수용과 동시에 국가 기억 속의 레이펑 이미지에서 엇나가면서 자신들의 레이펑 기억을 만들고 있다. 7살에 고아가 되어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성공을 이룬 자강불식 정신의 소유자이자 남을 위해 헌신하고 자기를 갈고 닦으면서 덕을 쌓은 인물로 레이펑을 정의하고, 인민들을 위해 희생하는 이상적인 당 간부와 공무원의 상징으로 레이펑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기억 속에서 레이펑은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격의 소유자이자 이상적인 당원, 이상적인 국가 간부의 상징이다. 레이펑을 영웅으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인 마오쩌둥은 ‘모든 당 간부는 인민의 공복이어야 한다’라고 했고, 그런 정신을 가장 잘 발휘한 사람이 레이펑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 그런 인민의 공복인 중공당원들과 정부 관료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중국 현실에서 중국 민간 사회의 레이펑 열기와 새로운 레이펑 기억은 국가가 민중에게 강요한 기억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국가에게로 돌려주는 중국 민중들의 복수의 기억이다.

 

레이펑에 관한 자본의 기억은 한편으로 중국 신세대의 기억이기도 하다. 이번 레이펑에 관한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진들도 레이펑의 연애 이야기도 넣고, 인간 레이펑을 강조하겠다고 말하였듯이, 중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레이펑에 대한 탈신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지금까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인민 교과서 역할을 한 레이펑 관련 사진이 어떻게 의도적으로 조작되었는지에 대한 증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골프채를 들고 씨가 담배를 물고 있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한국과 일본의 신세대를 사로잡았듯이, 총을 들고 트랙터 옆에서 있는 판에 박힌 이미지의 레이펑이 아니라 가죽 잠바를 걸치고 고급 상하이 시계를 찬 새로운 레이펑 이미지가 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이른바 ‘80후(後)’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중국 최대 스포츠 메이커인 리닝사는 2007년에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라고 적힌 레이펑 운동화를 내놓기도 했다. 레이펑 운동화를 설계한 젊은 디자이너는 레이펑을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면서도 출세도 하고 시도 쓰고 군인이면서도 멋진 차림을 즐긴 ‘쿨한 청년’으로 새롭게 기억한다. 미국 언론에서 ‘히피 레이펑’이 출현했다고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포스트 모던 문화 상품으로 다시 태어났듯이 레이펑 역시 그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중국의 레이펑 열기는 어찌 보면 낡고 한심하면서도 어찌 보면 새롭고 의미 깊다. 사회주의적인 것과 탈사회주의적인 것이 뒤엉킨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 중국 문화의 한 초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공당과 국가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생산, 유포, 관리하는 막강한 실체이고, 민간은 그런 이데올로기를 흡수하는 한편 균열내고 있으며, 시장 자본은 국가 이데올로기의 흐름을 타면서도 그것을 상업적으로 전용하여 자신들의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레이펑에 대한 기억의 분열을 진행되고 있는, 오늘 중국의 문화적 초상이다.

 

이욱연(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

(서남통신. 2009.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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