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제3회 후광 김대중학술상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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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09-06-09 10:46 조회21,7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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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後廣) 김대중학술상 수상의 영예를 베풀어주신 전남대학교와 심사위원 여러분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축하를 위해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솔직한 심경을 말씀드리건대 워낙이 학술활동이 부진한 제가 다른 상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 학술상을 타게 되어 죄송하고 면구스러운 마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남대가 제정하고 5·18연구소가 주관하는데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이 담긴 상을 받게 된 것은 어쨌든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공적은 이미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을 통해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김대중학술상을 더욱 영광스럽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영예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현역 투사로서 노고를 마다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후광선생이나 우리 국민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 아래서도 한반도의 평화에 여러차례의 위태로운 고비가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혹은 우리 정부에 대해, 혹은 국민과 해외여론을 향해, 또 어떤 때는 북측 지도자에게, 충고와 설득의 메씨지를 발신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하는 데 중요한 이바지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또 다릅니다. 부시 미국대통령이 오랜 대북적대정책을 겨우 바꾸었는가 했더니, 바로 이곳 한국에서 남북화해에 무성의하고 한반도평화관리에 무능한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6·15공동선언 이래 공들여 쌓은 탑들이 여기저기서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남북관계의 악화는 국내에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와 서민경제의 파탄이 겹친 이른바 ‘3대 위기’의 일부가 되어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등장 이후 기대를 걸었던 북미관계마저 지금은 부시 정권 말기보다 오히려 더 긴장된 형국입니다. 이는 한반도문제의 우선순위를 뒤로 돌린 미국측의 인식부족 탓도 있겠고, 북측의 조바심이나 과욕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사태는 우리 국민의 힘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고 지금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미관계 정상화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국측의 꾸준한 설득을 통해 정책전환을 한 덕분이었습니다. 부시의 강경정책이 더 큰 불행으로 안 간 것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대한 우리 정부의 결연한 거부와 포용정책으로의 끈질긴 유도가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참여정부 말기에 뒤늦게나마 두번째 남북정상회담과 10·4합의가 이루어졌는데, 만약에 새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과제별로 합의실행의 완급을 조절해나가는 슬기를 보였다면 북의 2차 핵실험도 없었을 테고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가 한껏 빛을 발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주변정세와 외국세력의 영향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한반도문제에서는 결국 한국의 선택이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해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포용정책으로 되돌아온 후부터는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된 전선(戰線)이 북미관계에서 남한사회 내부로 옮겨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종요로운 싸움터에서 한국의 민주세력이 2007년 대통령선거와 2008년 총선거에 잇따라 패배함으로써 오늘의 북미관계 후퇴를 초래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번 학술상 시상 결정의 한 근거로 저의 분단체제론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어설픈 학설에 약간의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재통합이 남북 각기의 내부개혁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으며 특히 남한사회에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지혜롭게 결합됨으로써만 분단체제극복의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는 점일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반도 평화에도 결정적 요인임을 인식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결의를 새롭게 다질 때입니다. 이명박정부가 국내정치는 잘못하더라도 남북관계만은 실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거나, 북한은 원래가 반민주적인 사회니까 우리는 남한의 민주주의 발전에나 몰두하는 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분단체제의 작동방식에 무감각한 발상들입니다. 오로지 민주화와 남북화해의 동시적 진전만이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민중생활의 개선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학술상이 기리는 후광선생의 공적이 남한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통일 작업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표본입니다. 또한 최근에 전대미문의 범국민적 애도 물결을 일으킨 고 노무현 대통령도 참여민주주의 신장 노력과 함께 6·15공동선언의 실천강령에 해당하는 10·4선언을 이루어내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그의 유언이 민주주의의 역행을 방관하면서 적당히들 좋게 지내라는 말이 아니라, 생전에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폭넓게 화합하라는 당부였음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참된 사회통합과 민족화해에 헌신하는 것이 귀한 상을 주신 뜻에 보답하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남대학교 200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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