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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용산 참사와 경찰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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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1-23 08:39 조회20,7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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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기대어 치안을 확보한다는 발상은 17세기 중엽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 나타나 19세기 초 영국에서 확립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법을 집행하고 공공질서를 확보하고자 경찰력을 확대하려는 경향은 근대 국가기구의 일반적인 확대와 맞물려 진행돼 왔다. 하지만 경찰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경찰의 책무성을 어떻게 보장하고, 경찰력의 폭력성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과제를 낳았다. 특히 노동운동이나 빈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 폭력을 휘둘러 피를 부른 사건들이 서구에서 19세기 말부터 주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24년 하와이에서 필리핀 노동자 16명이 경찰에 살해당한 하나페페 학살사건 등 경찰 폭력의 문제점이 불거지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였다.

 

최근 들어 경찰 폭력 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난 영역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개발에 근거한 강제철거’다. 이른바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는 강제철거 문제가 도시화와 인간 정주권 문제를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이슈가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강제철거가 도심 재개발이니 슬럼가 정화니 거주지 단장이니 도시미관 정비니 하는 명분으로 강행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의 세계사적 연결고리를 발견한다.

 

지난 20∼30년 사이에 강제철거가 극심한 인권침해로 이어진 사례가 대단히 많다. 짐바브웨·파키스탄·인도·캄보디아·앙골라·멕시코·러시아·중국·미국·캐나다 등 개도국·선진국을 가리지 않고 ‘도시 개발’과 인권이 대립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전협의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대안도 없이 철거를 요구하고, 사회 약자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정책을 시행했으며, 그들의 자포자기적 몸부림을 ‘불법’으로 몰아붙여 경찰 폭력의 정당화로 악용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제철거가 ‘심대한 인권침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강경대처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였다고 강변하는 경찰한테 199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 나온 철거 가이드라인을 들려주고 싶다. ①당사자들과 진정한 협의 ②철거시점에 관한 적절하고 합당한 고지 ③당사자들에게 해당 건물이나 토지가 어떤 용도로 사용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설명 ④당사자들이 다수일 경우 정부 관리 입회 아래 철거 시행 ⑤철거 요원들의 분명한 신원 제시 ⑥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악천후나 야간 철거 금지 ⑦당사자들에게 법적 구제절차 제공 ⑧당사자들에게 법률구조 제공.

 

이런 원칙에 대해 당장 반론이 나올 것이다. 우리 현실에 비추어 너무 이상적인 원칙이다, 당사자들이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폭력시위가 도를 넘었다 등등.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본질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더 높은 ‘가치’가 인간 세상 어디에 있는가? 특히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했다는 말 한 마디가 우리를 전율케 한다. “책임은 인정하지만 정당한 집행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지도자로서 ‘추악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했던 호르헤 비델라 장군이 1985년 재판정에 섰을 때 한 말이 있다. “책임은 인정하지만 잘못한 것은 없다.”

 

스탠리 코언은 이처럼 인권가치를 ‘부인’하는 권력의 논리구조에는 이념성향이나 탄압의 강약을 떠나 일종의 공통점이 있다고 짚었다. 또한 인권의 경고음이 미리 울리지 않았던 적도 없다고 한다. 불행히도 권력자들만 그 신호에 귀를 막고 아래를 향해 질주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09.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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