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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베이징의 마오저둥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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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25 19:44 조회20,4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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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홍콩언론들이 베이징의 한 좌파그룹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 작년 12월 명보(明報)가 “우여우즈샹슈서(烏有之鄕書社)”라는 베이징의 한 서점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는 그룹이 중국 좌파의 대본영이 되어가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18세기 이래 국제금융사건들을 국제금융자본세력의 음모로 해석하여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한국에도 번역출간된 “화폐전쟁”을 쓴 송홍빙(宋鴻兵)도 이 그룹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주요 기고자 중 하나이며, 이 홈페이지에 소개된 필자들의 명단을 보면 중국 내 주요 좌파이론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자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이 단체가 4인방 중 마오저둥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알려진 장춘차오(張春橋)의  선집을 발행하는 등 문화대혁명을 옹호하는 활동을 전개해 정부의 단속을 받았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전면적인 대외개방이 추진됨에 따라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시장화와 동시에 민주화가 진행되지 않아 권력과 자본의 유착을 견제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자유주의적 해석과 과도한 시장화, 개방화로 계급분화를 방지할 수 있는 국가 통제능력의 쇠퇴가 주된 원인이라는 좌파적 해석이 팽팽히 양립하고 있다.

 

이들 사이의 논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으나 빈부격차가 계속 증가하고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좌파들의 발언권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사회를 뒤흔든 주요 논쟁들, 예를 들어 2004년 국유자산 유실 문제를 둘러싼 랑시엔핑(郞咸平)논쟁, 2006-7년의 물권법 논쟁, 작년의 농지사유화 논쟁 등에서 우여우즈샹의 홈페이지에 기고하는 필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활동이 주목을 받는 것은 단순히 사회정의, 사회공평 문제를 다시 전면에 제기했기 때문만이 아니며 더 중요하게는 마오저둥(毛澤東)사상의 기치를 들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개최하는 강좌에서는 "신자유주의자와 마오저둥을 모욕하는 사람을 초청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중국공산당이 마오저둥사상을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지도이념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고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도 빈부격차 증가, 부패의 만연 등으로 인해 마오저둥시대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오저둥사상의 기치를 내거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일견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는 이들이 옹호하는 마오저둥사상이 문화대혁명 시기의 마오저둥사상, 특히 "계속적인 계급투쟁론"이라는 사실이다. 중국공산당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이 이론을 폐기했고 실사구시를 마오저둥사상의 핵심 내용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1년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에서는 문화대혁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공산당은 과거 자신들의 통치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거나(특히 마오저둥이나 저우언라이에 대한 전면부정으로 이어져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하거나), 그 반대로 “계속적인 계급투쟁”과 같은 논리가 경제발전을 위한 정치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등을 우려해 문화대혁명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따라서 양측이 내세우는 마오저둥사상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내용, 심지어는 적대적인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동안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공식입장과 충돌하는 정치적 견해를 처리하는 데 있어 개혁개방정책을 비판하는 좌파들에 대해서는 서구식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관용적 태도를 취해왔다. 그리고 우여우즈샹의 활동은 여전히 중국공산당 내에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원로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에 대한 옹호론은 사실상 덩샤오핑노선과 개혁개방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만연되고 있는 사회적 불만도 기층 민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서구식 자유주의적 논리보다는 마오저둥사상이라는 토착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경우 더 큰 폭발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이 최근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마오저둥사상에 대한 선전과 중국공산당 노선에 대한 비판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중국공산당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그 귀추가 주목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 현대사에서는 지배적 담론에 의해 공식입장과 다른 역사서사들이 억압된 경우가 많았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서사도 그 전형적인 사례 중의 하나이다. 필자도 문화대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그처럼 많은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문혁에 참가했으며, 이들의 경험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 “전면부정”이라는 공식결정에 의해 봉쇄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이들의 문혁에 대한 논의는 그 동안 봉쇄된 목소리를 끌어낸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여우즈샹의 주요 비판대상 중의 하나가 필자가 1월 초에 본란을 통해 소개한 잡지 염황춘추의 주요 필자들(이들의 마오저둥시대에 대한 부정적 평가)인데, 이들 사이의 논쟁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않는다면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현대사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서남통신. 200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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