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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한국, 자유무역의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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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07 07:59 조회20,2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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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런던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금융감독기구를 신설하고 헤지펀드를 규제하는 등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자는 합의가 나왔다. 여기에서 한국은 부실채권 정리와 보호무역주의 반대를 촉구했고, 미국과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공조방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진전을 논의했다.

이론을 앞서가는 경험의 세계

또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타결을 위하여 막바지 줄다리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 정부와 몇몇 언론은 자유무역론의 전도사가 되어 세계를 계몽하려는 것 같다. 한국은 자유무역의 챔피언이 되기로 결심하였는가?

물론 이론으로서의 자유무역론은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비교우위론은 보편적 전제에서 연역된 논리이기 때문이다. 비교우위는 한 국가 안에서의 산업끼리 비교한 개념이므로 절대우위 산업이 하나도 없는 국가라도 비교우위 산업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각국이 비교우위 산업에 주력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이익을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무역의 이익을 말하는 것은, 삼각형의 변의 길이에 관한 수학공식을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잘 알려진 '잭과 콩나무'라는 이야기에서 암소와 콩을 바꾼 잭은 엄마에게 크게 꾸중을 듣는다. "암소와 콩을 바꾸다니 바보 같으니라고…" 그러나 교환에 참여한 잭과 할아버지의 생각은 이와는 다를 것이다. "마법사는 마법의 콩에, 잭은 암소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그 할아버지는 마법 콩을 생산하는 데 실력이 있었고, 잭은 가난했지만 그래도 수중에 가진 가장 좋은 것은 암소였다. 소젖이 끊어지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소젖을 짜서 마법 콩과 바꾸었다면, 훨씬 더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자유무역론을 논리 형식의 차원에서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능력이나 기술과 상관없이 자유무역은 누구에게나 이로운 것이라는 이야기는, 일반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여기에는 비교우위론을 이해할 만한 지력의 부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은 구체적인 관찰이나 경험이 보통 사람의 직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교환의 이익을 알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상이 평평하지 않다는 것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잭의 이야기에서도 구체적인 현실 세계의 경험이 전개된다. 잭은 불쑥불쑥 하늘로 자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기로 마음 먹는다. 마치 자신의 세계에서 결핍을 느낀 유럽인들이 죽음처럼 깊은 망망한 바다로 나아가기로 결단한 것처럼. 하늘나라 저편에는 커다란 성이 있다. 잭은 그 성에 침입하여 거인의 보물을 훔치고 마침내는 거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모험담이 너무 폭력적이라고 여겨지면, 잭에 대해 적당한 변명거리를 덧붙여 준다. 이를테면, 요정이 나타나 거인 살해가 잭의 소명이라고 말해준다든지, 거인의 보물을 취하는 것을 잭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정당화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잭이 교환의 세계와 강탈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한국이 굳이 자유무역의 변호인 역할을 자처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엘리트들 중에 교과서에 철저한 순수한 학생이 생각보다는 많다. 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한국이 처한 동아시아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교환의 세계가 넓어져 왔지만, 그것은 특히 북미, 유럽, 동아시아에 집중된 것이었다. 이들 지역 중에서 동아시아는 근대에 늦게 도착한 곳이고, 한국은 특히 교환의 그물에서 소외되는 데 대한 염려가 크다.

시스템의 위험 줄일 규제 필요

이론과 현실을 두루 감안한다면, 보호무역을 말하는 것은 선택권 밖의 일이다. 그렇다고 물정 모르는 학생처럼 고집으로 일관할 것까지는 없다. 격변기에는 안정을 위해 신중한 국가의 보호조치가 필요하기도 하다. 기왕 추진된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기본 틀 자체를 뒤흔들기는 어렵겠지만, 현명하다면 시스템의 위험을 줄이는 규제를 더하려는 것 또한 마땅한 일이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한국일보. 2009.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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